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오랜만에 형네 가족과 함께 소래포구에 갔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끝낸 조카를 위해 바닷바람도 쐬고 회도 한 접시 먹을 요량으로 전통 어시장을 들른 것이다. 2, 3년 전에 큰 화재가 있어 대부분이 불탄 이후 무슨 사업을 준비 중인지 육중한 철제 울타리로 막혀 있다. 화마를 피한 어시장 입구와 한 귀퉁이에서는 여전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시장은 좁은데 밀려드는 인파로 어물전 좌판 사이의 길은 인산인해가 됐다. 앞사람의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 조금씩, 조금씩 이동해야 했다. 누군가가 앞에서 가격 흥정을 할라치면 그 뒤의 모든 사람들은 걸음을 멈춰야 했고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옆 가게 주인의 눈을 피해가며 활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해야만 했다. 어느 가게가 더 싱싱하고 어느 가게가 더 저렴하게 회를 파는 것일까? 그 많은 가게 중에서 어디에서 회를 사야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 가계가 두세 군데면 면밀히 따져 볼 텐데 선택지가 많아지니 선택 장애가 발생했고 급기야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하게 됐다. 

호객행위! 원하지 않는 정보를 과다하게 제공하니 쇼핑이 즐거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반면 대형마트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많다. 형광등을 하나 사려는데 그 넓은 마트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우선 찾아야 하고 조명등 코너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냥 형광등인지 요즘 인기 있는 LED인지, 와트수라 불리는 전력소모량은 얼마인지, 주광색인지 백색인지 등등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안내해 줄 직원들은 얼씬도 않는다. 나와 같은 처지의 중년 아저씨들 몇몇이 서서 진지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으로 형광등 주변을 배회하는 꼴이 안쓰럽다. 

나의 일터인 공원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공원관리인에게 부담을 가장 크게 주는 것은 민원일 것이다. 내가 아는 공원관리인 중 한 분은 극성 민원을 제기하는 어르신들을 모아 공원내 시민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그리고는 주기적으로 만나 적극적으로 민원을 들어 줬더니 민원인들도 만족했고 공원 관리에서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민원을 맞이하는 공원관리인 입장에서는 너무도 많은 민원이 매일 매일 접수되고 민원에 응대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민원 한 건을 제기하기 위해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공원관리사무소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육하원칙에 따라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이 과정이 번거로워 성질이 급한 몇몇 사람이 아니라면 불편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공원내에서 발생 가능한 불편사항을 조사한다면 전문인력과 예산,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원 구석구석을 다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민원을 종합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면 인력과 예산,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요즘 유행어로 말한다면 집단지성인 것이다. 

먼저 큰 공원이라면 공원 양끝과 중앙에 민원함을 만들자. 우체통처럼 예쁘게 만들어 민원도 받고 우편물도 받아 주면 어떨까? 민원함 옆에는 메모지와 볼펜을 항상 배치하고 ‘본 민원함은 공원소장이 매일 아침에 수거해 처리합니다’라고 써붙여 신뢰감을 주면 더 좋겠다. 그리고 디지털 세대를 위해 공원 민원담당자에게 문자를 바로 보낼 수 있는 휴대전화 번호도 써두면 좋겠다. 

한 발 더 나가서 공원내에 소통활동가를 배치해보자. 공원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원이나 의견을 시민과 직접 나눌 수 있는 소통활동가를 배치하자는 것이다. 소통활동가로는 시민들 중에서 희망자를 뽑을 수도 있겠지만 전직 공무원이나 퇴직 전문가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공원 소통활동가들이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처럼 멋진 유니폼과 모자를 쓴다면 쉽게 눈에 띌 것이다. 그들이 공원을 주기적으로 산책하면서 시민들의 민원을 수집해서 공원관리에 반영하는 것이다. 공원 소통활동가들의 노하우가 오랜 기간 쌓이다 보면 우리의 공원관리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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