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노심초사 이루고자 했으나 좌절하고만 북벌 통일전쟁의 뜻을 계승한 사람이 강유였다. 그는 수없이 병사를 일으켜 위나라 서북 방면을 노렸다. 그러나 국력이 약한 촉으로서는 뜻을 이루기 어려웠다. 한편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세를 잡았을 때 하후패라는 인물이 촉으로 망명했고, 그는 높은 지위로 인정받았다. 하후패는 더 늦기 전에 위를 치라고 주장했다. 

재상 비위는 "아직 때가 아니오"라며 거절했다. 강유가 떠들었다. "인생이란 쉬 늙어가고 세월이란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 사이로 달리듯이 짧은 것 아니오. 이렇게 계산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세월에 중원 땅을 되찾느냔 말이오? 정말로 답답하구려."

비위는 온건주의자고 정치적으로 보면 보수주의, 강유는 무장 출신으로 강경파이며 제갈량의 유훈을 자기 살아 생전에 실현하고자 의욕이 넘친 인물이었다. 둘 사이에 이런 간극이 결국은 조화를 맺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다가 촉한은 패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흔히 진보와 보수, 강경파와 온건파, 문신과 무신 등 대립하는 양쪽이 균형 있을 때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지 갈등과 분열이 커지면 추락하고 마는 건 동서고금 이치가 다를 바 없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