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지구의 파멸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분침이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이다. 자정은 지구 파멸의 순간을 뜻한다. 미국의 핵 과학자회 ‘BAS’가 올해 ‘운명의 날 시계’ 분침을 ‘자정 2분 전’이었던 지난해보다 20초나 앞당겨서 ‘23시 58분 20초’로 조정했다고 공개했다. 동서 냉전 시대가 끝난 직후에 분침이 자정 17분 전으로 잠시 미뤄지기도 했으나 올해는 1947년 시계가 처음 등장 이후 처음으로 자정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것이다. 레이첼 브론슨 (Rachel Bronson) 핵 과학자회 회장은 "인류 파국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가 이제는 시간이나 분이 아닌 초 단위로 표현하게 됐다"고 밝히면서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은 "어떤 조그만 실수나 더 이상의 지체를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운명의 날 시계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엔 강대국의 핵무기 경쟁이 가장 큰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유전자 조작, 복잡한 정보 환경 등 다양한 환경 파괴 기술들이 인류에 대한 위협을 계속 높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핵 과학자들이 제정하고 매년 시간을 조정해 온 ‘운명의 날 시계’가 ‘인류 파국 100초 전’을 선언했음에도 대중(大衆)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다.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총선을 앞둔 정당이나 정치인들조차 이를 거론하고 있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나 지구 파멸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 분침이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는 과학자들의 이유 있는 경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 버려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지구가 이상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변(異變)을 거론하며 ‘지구가 중병(重病)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아마존 밀림의 화재, 수개월째 이어진 호주의 대형 산불,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뜬금없는 폭설, 한반도의 150배에 이르는 남극 기온이 처음으로 섭씨 20도를 넘어섰고, 연간 200억t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소식까지 이러저러한 이상 현상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매일 미세먼지 농도를 살피는 일이 일상(日常)이 됐고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 됐다. 게다가 몇 년 간격으로 ‘사스’와 ‘메르스’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니 요즘은 ‘코로나19’로 불리는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를 흔들고 있으니 이런 현상 또한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닌 듯싶다. 

국제 지속가능성 연구단체인 퓨처 어스(Future Earth)가 ‘과학자들이 꼽은 세계 5대 위험’이란 것을 발표한 일이 있다. 52개국의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대응 실패, 기상이변, 생물 다양성 감소, 식량 위기, 그리고 물 부족이 인류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위험으로 꼽았다. 그 중 기후변화 대응 실패와 기상이변은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9 세계 위험 보고서’에서도 앞으로 10년간 인류를 가장 크게 위협할 요인으로 제시한 바 있다. 최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운동이 있다. 과학자들의 경고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가장 모범적인 운동이다. 제로 웨이스트란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서 어떤 물건도 사용 후에 매립되거나 바다에 버려지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 운동이다. 

‘5R’라고 부르기도 하는 핵심 내용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소비하지 않을 것(Refuse), 어쩔 수 없이 소비해야 한다면 최대한 사용량을 줄일 것(Reduce), 모든 자원은 가능한 한 재사용할 것(Reuse),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자원은 재활용할 것(Recycle), 쓰레기로 버려진다면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품을 쓸 것(Rot) ’등이다. 이미 미국의 여러 주에서 정책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 있다는 이 운동을 우리도 국가정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구의 파멸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허투루 흘려 버리지 말자. 내가 서 있는 이 땅은 우리 후손들도 딛고 살아가야 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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