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제물포고 교감

얼마 전에 국가 대표 운동선수와 관련된 폭력 사건이 공개되면서 세상의 공분을 자아내게 했다. 아직도 폭력에 의존하는 교육 방식이 국가대표 수준에서도 자행되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최고의 수준에다 최고의 역량을 갖춘 지도자들이 국가 대표 선수를 교육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 교육 방식이 과거 해묵은 신체 폭력을 동반하는 방법으로 지속된다는 것이 그저 의아할 뿐이다. 억압과 강제적인 방식, 특히 신체적인 체벌을 근거로 훈련 효과를 높이려 한다는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하듯이 한 분야에서 오랜 전문가일지라도 변화하는 새로운 교육 방식과 인권존중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수구골통 관습주의자들이나 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지도자를 계속 고용해 선수들을 지도하는 해당 종목 연맹이나 기관은 냉엄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선수나 학생을 위해서 선의(善意)로 포장해 사랑의 손찌검, 매질, 회초리를 들었다는 언어의 희롱을 더 이상 오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많은 삶의 영역에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둔갑한 학생 체벌, 권위적인 가부장적 체제에 의한 가정폭력, 상하 간의 위계질서를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군대폭력은 구시대적인 유물이다. 최근에는 사람들 사이에 빈번하게 자행되는 사이버 언어폭력, 개인 신상 털기, 악플에 의한 인격적 살인 등 심각한 인터넷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그 후유증이 말하듯 꽃다운 젊은 연예인들이 악플에 시달려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또한 모모 재벌들이 빈번하게 자행했던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는 한마디로 국가를 위한다는 기업행위를 선의로 포장해 실제로는 자신의 가문이나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는 상행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확증편향의 대표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가족공동체의 문제를 짚은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체벌의 본질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스웨덴이 과거 우리나라처럼 ‘사랑의 매’를 용인하던 시절, 한 엄마가 잘못한 아이에게 회초리를 구해 오라고 시키자 한참 뒤 아이는 울면서 돌멩이를 주워왔다. 아이는 회초리로 쓸 만한 나뭇가지를 못 구했다며, 대신 자신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했다. 참으로 기특한 아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어떤 명분으로 포장을 해도 체벌은 굴욕이자 고통일 뿐이다. 존엄의 가장 밑바닥을 헤집는 고문이다. 아이에게 돌을 던지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명분은 세상에 없다. 그런 명분이 있다면 지옥으로 가는 길을 포장하는 선의일 뿐이다. 

선의를 포장한 폭력은 이젠 어떠한 교육 현장에서도 영원히 차단해야 한다. 그 대신에 ‘사람 위에 경쟁 없다’는 인간 중심의 교육으로 승리보다 값진 인간다움의 길을 걷는 진정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종교 지도자의 신분으로 정치적 참여의 자유를 빙자해 국민이 뽑은 국가의 지도자를 이해집단의 정치적 공세를 뛰어 넘어 인격적인 모독과 민주시민의 지성과 예의범절의 근간을 파괴하는 악랄하고 치졸한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이는 선의를 가장한 비열한 폭력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최악의 행태이다. 이 땅의 모든 선수, 학생, 젊은이, 민주시민들이여! 인간에게 참혹한 멍에를 부여하는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고 또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단호히 거부하고 저항하자. 이것만이 진정한 민주시민이 되는 길이자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인간존중의 사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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