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는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그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이나 고통을 뜻합니다. 햇빛이 있어야만 그늘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추울 때는 따뜻한 해를 그리워하고, 더울 때는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게 되는 것이 삶입니다.

몇 해 전, 여름이었습니다. 길을 걷고 있었는데 더위 탓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습도까지 높아 온몸이 끈적거리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마침 길가에 은행이 있어서 더위를 피하려고 들어갔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땀이 순식간에 달아나는 듯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에어컨이 고마웠습니다. 

은행을 나와 다시 해가 내리쬐는 길을 걷던 중에 문득 ‘만약 내가 더위라는 고통을 겪지 않고 은행에 들어갔다면’, ‘만약 내가 시원한 에어컨이 설치된 곳에서 종일 일을 하고 있었다면’, 에어컨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때로는 우리의 생사를 가르기도 합니다. 박원종 작가는 「내 영혼의 산책」에서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특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덮쳤을 때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오직 ‘살고 싶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주위에 있던 나무 둥지 같은 것들을 끝까지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살아야 한다’라는 간절한 소망과 의지만 있다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라도 극복할 방도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고통이나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상황을 ‘바꾸거나’ ‘회피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고통을 회피하면 잠시는 잊을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다 보면, 결국 해법을 찾게 되고 해결 또한 자연스레 이뤄질 겁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경험과 지혜는 결국 엄청난 성장으로 이어질 겁니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정호승 시인이 왜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늘이 있는 사람이 지혜로우니까요. 자신이 겪고 있는 난관이 훗날 자신의 성장을 돕는 양분임을 믿고 있는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라는 책에 따르면, "현명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의 차이를 구별 짓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다"고 합니다. 매우 일리 있는 말입니다. 문제는 느닷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사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이 말은 ‘문제’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말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일까요?

앞서 소개한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접근해 보라고 자신의 시에서 조언하고 있습니다. 

"(…)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도 아니다/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내가 그 시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아픔을 위로해 줘야 한다는 시인의 통찰이 놀랍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선뜻 내미는 따뜻한 손길은 그들에게 희망이 돼줄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에게도 시련을 극복할 용기가 돼 준다는 깨달음, 그래서 시인은 "나무 그늘에 앉아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라고 말했을 겁니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두려움과 맞서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아픈 경험과 눈물들이 훗날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자산이 돼 주리라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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