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why)라는 부조리 철학의 희망은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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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why)라는 부조리 철학의 희망은 기다림이다
백승국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3.13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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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국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백승국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교수

평범한 우리의 일상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상을 파괴하고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람들과의 접촉도 금지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오랜 친구를 잠재적 보균자로 바라보는 차별과 경계의 눈길을 갖게 한다.

사람들을 만나 다소곳이 담소를 나누던 행복한 저녁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

일상이 깨지고 파편화되는 순간 부조리 감정은 침투한다. 부조리 감정은 ‘왜(why)’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왜! 일상이 망가지는 거지. 왜! 경제는 추락하지. 왜! 한국인들은 바이러스 보균자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지. 왜! 한국은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입국을 불허하는 국민이 되었지.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색할 틈도 없이 정치인들은 코로나를 이데올로기 도구로 바꾸고 있다.

바이러스 권력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코로나 프레임을 선점하고, 총선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욕망을 보인다.

좌와 우로 갈라진 이분법의 정치적 논리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코로나를 이용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지식과 권력을 연구한 미셀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바이러스가 막강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제공하는 힘의 원천임을 예견했다.

실제로 중세의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이 돌던 시절에 바이러스 지식과 정보를 가진 독재 권력의 힘은 하늘에 닿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이어지는 코로나 브리핑과 24시간 쏟아지는 코로나 뉴스는 바이러스 권력의 감시와 조종이 무엇인지 상상하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무색무취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상의 적이다. 

두 달 넘게 보이지 않는 적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리의 몸과 정신에서 제거하는 심리적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다.

몇몇 정치인들이 제안하는 포퓰리즘 방역은 허탈하다. 코로나와 연관된 수많은 정보와 뉴스는 연일 쏟아지고, 우리는 비판도 검증도 없이 검색만 하고 있다. 눈만 뜨면 증폭되는 코로나 지도와 수치는 전 국민을 전염병 스트레스에 빠지게 하고 있다.

2차 세계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 빠진 유럽 사람들에게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한 부조리 철학은 심리적 위안을 주는 생각의 도구였다.

전쟁의 공포로 일상이 파괴된 상황에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기력과 절망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일상을 회복하는 힘을 준 생각의 도구였다.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이 없다. 반면에 희망을 간직한 사람은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하루 또 하루 희망의 끈을 연결하는 자원봉사자와 의료진이 대구와 경북을 찾고, 시민들이 작은 선물을 보내고, 마스크를 양보하는 시민의식이 기다림의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지역감정을 넘어, 좌우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한민족 ‘우리’라는 촘촘한 연결망으로 무장하고, 코로나는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싸움임을 증명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잃어버린 일상을 찾는 그날까지 전염병 스트레스를 날리고, 희망의 기다림으로 무장한 우리가 바로 권력이고, 우리가 바로 힘의 원천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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