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부모님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아야, 그만 나부대라"였다. 가수 진성의 노래 ‘보릿고개’에 나오는 가사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아야 우지마라 배 꺼질라"와 궤를 같이하는 말이다. 속울음을 울며 "배 꺼질라"만 입안으로 삼켰을 뿐 의미는 동일하다. 자식새끼 나부대는 것마저도 흐뭇한 맘으로 지켜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혹자는 ‘어디서 주워들은 보릿고개 시절 얘기를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늘어놓는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88년도 ‘한양’에서 만난 동갑내기들도 이 같은 얘길 듣노라면 피식 웃곤 했으니까 말이다. 촌놈들이 유난히 많이 다닌다는 학교였는데도 공감하는 이를 만나기가 건초더미에서 이쑤시개 찾기였으니 기자의 고향은 깡촌 중에서도 깡촌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때의 기억이 뼈에 사무쳐서였을까. 기자는 언제 어느 자리건 반찬투정이란 걸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밥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맛난 것’보다는 ‘먹을 것’을 찾는 입장이다. 집에서도 매한가지다. 상대적으로 덜 깡촌 출신인 아내는 끼니 때마다 이것 저것 구색을 갖춰 먹는 걸 좋아한다.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생선도 굽고, 꼬막도 무치고, 취나물도 볶는 식이다. 밥 한 그릇 해치우는데는 어느 반찬이든 한 가지면 족한데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서 에둘러 제안했다. 이른바 ‘감선’(減膳)이다. 예전에 혜성이나 지진이 나타나고, 천문현상에 이상이 생기면 군왕은 피전(避殿)을 하거나 수라상의 반찬 수를 줄이는 감선 등을 하면서 자숙했다고 한다. 뒤이어 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의 사직을 청하는 상소가 줄을 잇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정치를 똑바로 하지 못해 천도를 어긴데서 비롯된 재앙이라는 인식에서다.

촌무지렁이도 감선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내 나라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요즘, ‘현대판 감선’은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든다.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진다는 대통령에게만 감선을 강요할 수 없기에, 감선이 단순히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의미를 뛰어넘기에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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