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 사회평론가
이상익 사회평론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전 세계 과학자, 철학자, 작가 등 각 분야 저명인사 100 여 명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 또는 발견이 무엇인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한 전공만큼이나 천차만별이었다. 그 중 사회과학분야에서는 민주주의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혔다. 하기야 서구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주창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완결무결한 정치제도라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내재적인 약점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되는 경우다. 쿠데타, 혁명 형태를 띤다.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 심지어 그리스, 이집트, 태국에서도 일어났다.

다른 형태는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 의해 민주주의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례다. 최근 들어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 죽음은 덜 극적이지만 역시 치명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하버드대 레비츠키 교수와 지블랫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한 바 있다. 

첫째,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둘째,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며 셋째,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마지막으로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지 여부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극단적 포퓰리즘과 손잡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전망을 매우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편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떠한지, 안전한가 아니면 위기인가?

현 정부는 지난 3년 내내 정치, 사법, 외교, 경제, 사회복지, 언론 등 국가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적폐청산과 혁신 드라이브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사법 분야에서 친여 인사의 대법원장 및 헌법위원회 위원 임명,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 통과, 일방적인 검찰인사 및 직제개편, 일부 각료 및 헌법상 기관장 임명 등도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 끝에 관철시켰다

외교면에서 친북한, 친중 노선을 지향함으로써 전통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의 균형적인 외교 관계를 소홀히 하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는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친노조정책, 과도한 금융규제 및 세금정책, 실효성 없는 부동산 규제책, 보편적 포퓰리즘 정책, 탈원전 정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외 공영방송의 공정치 못한 보도, 일부 언론사의 편향된 방송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초기 중국 우한(武漢)발 코로나 19에 대한 미숙한 대응과 4·15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과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기본소득 지급도 예외가 아니라 하겠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하에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우려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그 결과 헌법도 야당도 국민도 언론도 민주주의를 보호하는데 분명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제도와 과거 수천 년간 내려온 왕권 전제주의라는 전통적 사상이 심하게 뒤섞인 모자이크로서 이러한 시행착오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리라. 

이와 관련해 하버드대 레비츠키 교수와 지블랫 교수는 민주주의 보호를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두 가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mutual tolerance)과 이해(understanding) 두 번째로 헌법상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forbearance)가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더욱 진화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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