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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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홍봄 기자
  • 승인 2020.04.09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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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아리엘 버거·엘리 위젤 / 쌤앤파커스 / 1만8천 원

광기와 폐허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스승이 연대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세대에게 전한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 생전에 보스턴대학교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엘리 위젤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인권 문제뿐 아니라 기억, 믿음과 의심, 광기와 저항, 말과 글을 넘어서는 예술 같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을지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저자 아리엘 버거는 15세에 처음 엘리 위젤을 만났고, 20대를 엘리 위젤의 학생으로 보냈으며, 30대를 엘리 위젤의 조교로 일한 인물이다. 25년 동안 이어진 만남의 기록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등을 토대로 엘리 위젤과 함께 한 수업의 열기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저자는 엘리 위젤이 학생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와 강연의 주제들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눠 정리했다. 기억과 가르침, 다름과 타인, 종교와 믿음, 광기와 저항, 증오를 넘어서는 말과 글, 예술과 열정이 그것이다. 이 모든 주제들에 대해 엘리 위젤은 학생들과 함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엘리 위젤은 강의할 때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다. 엘리 위젤은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목격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교육을 강조했다. 

 엘리 위젤의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때로는 위트 넘치는 수업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리 위젤의 학생이 됐다고 해서 반드시 전사 같은 활동가가 되거나 저항자나 성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엘리 위젤과 함께 한 수업을 통해 우리는 힘도 영향력도 없이 외면당하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쓸 때 비로소 인류애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서쪽이 빛난다
이세기 / 실천문학 / 1만 원

인천 덕적군도에서 태어나 바다를 모태 삼아 시작(詩作) 활동을 해 온 이세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 출간됐다.

시집 말미의 산문에서 밝히듯 시인에게 고향 섬과 바다는 곧 ‘서쪽’이며, 가장 아프고 추운 지명이다. 어떤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거룩한 맨손’의 삶을 자처하는 사람들. 이세기 시인은 운명인 듯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받아 적는다. 그 속에는 감미로운 낭만보다는 강퍅하고 신산한 섬 생활이 놓여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피 맺힌 그리움이자 반드시 기록해야만 할 역사다. 

시집을 펼치면 강다리(멸칫과의 바닷물고기), 갯바탕(갯벌이나 갯가), 북새(노을), 뻘뚱(보리수 열매), 노래기꽃(금잔화) 같은 토속언어들이 파닥이는 동시에 뭇 생명을 향한 경외감이 솟구친다.

이 시집을 넘기는 동안 독자들은 넓고 깊은 바다가 전하는 삶의 전언(傳言)들, 고달픈 섬사람들의 삶,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간과했던 신비로운 섬의 언어들을 발음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짭조름한 바닷물이 몸속으로 밀려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무의 시간
김민식 / 브레드 / 1만7천 원

이 책은 나무로 만나는 흥미진진한 역사, 건축, 과학, 문학, 예술 이야기다. 나무를 보고 또 보며 시작된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 인문학을 소개한다.

저자는 한국의 목재산업이 활황을 띠던 1970년대 말부터 40년 동안 캐나다·북미·이집트·이스라엘·파푸아뉴기니 등 나무를 위해 55개국을 다녔다. 비행 여정만 400만㎞, 지구 100바퀴에 이르는 이 기나긴 시간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삶을 만났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나무를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저자는 나무를 빌미로 톨스토이의 소설과 고흐의 그림, 박경리 선생이 글을 쓰던 느티나무 좌탁 앞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60주년 기념 마차 속에서 권리장전을 끌어내고, 호크니의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보며 그 고장은 바닷바람이 거세서 방풍림을 심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지식도 가득하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사과나무로 가구를 만든 메타포와 안도 다다오가 나무를 심는 이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놓인 테이블의 의미를 되새기는 등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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