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와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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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와 코로나19
이태희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시인
  • 기호일보
  • 승인 2020.04.1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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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이태희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그날 저녁 의사 리외는 복도의 어둠침침한 저 안쪽에서 털이 젖은 큰 쥐 한 마리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불쑥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 짐승은 멈춰 서서 몸의 균형을 잡는 듯하더니 의사를 향해 달려오다가 또다시 멈추어 섰고 작게 소리를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다가 마침내 빠끔히 벌린 주둥이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져 버렸다." 

1947년 알베르 카뮈가 발표한 「페스트」의 첫 장면이다. 수도 없이 쥐들이 죽어 나가다가 결국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2019년 말에 시작된 ‘코로나19’도 ‘박쥐’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야생동물이 감염원으로 지목되자 한 생물학자는 인간이 생태계를 잘못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연이 공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간이 자연을 지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페스트」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속히 늘기 시작하자 시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도시 전체를 봉쇄했다. 

소설에서는 전염병 확산 지역이 ‘오랑’이라는 시에 국한돼 있기에, 세계적 대유행에 이른 현재 상황과 비교하기는 무리이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 전체 혹은 도시를 ‘봉쇄’하고 있다. 가히 칼 없는 전쟁의 상황이다. 아니 전쟁보다 더한 상황이다. 역설적이게도 내전이 멈추지 않았던 중동의 한 지역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전쟁이 멈췄다고 한다. 

소설에서 이러한 도시 봉쇄와 관련해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타지에서 들어온 기자 ‘랑베르’의 도시 탈출 시도이다. 자신은 오랑 시의 시민이 아니라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는 리외를 찾아와 자신은 이 고장 사람이 아니니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내용의 증명서 발급을 부탁한다. 리외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미 사태에 직면한 이상 그도 사태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피력한다. 이미 한배를 탔다는 것이다. 당국이나 의료계가 속수무책으로 그 확산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환자들의 구호를 위해 자발적인 ‘보건대’를 조직해 활동한다는 점이다. 

「페스트」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의 하나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있다. 오통 판사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리자, 페스트 발생 6개월여 만에 개발된 혈청을 그 아이에게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 소설의 주요 인물인 의사, 신부, 기자, 공무원과 가족들이 모두 병실에 모여 이를 지켜봤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이는 숨을 거두었다. 그때 의사 리외가 신부 파늘루 곁을 지나며 한 말이 인상적이다. "이 아이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어요." 전염병이 발생하자 설교를 통해 신의 심판, 신의 재앙이라는 것을 강조해 온 신부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도시 탈출을 꿈꾸던 기자도, 신의 재앙이라 말하던 신부도, 페스트에 아들을 잃은 오통 판사도 보건대에 합류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는 1년여 만에 사라졌던 쥐들이 돌아오면서 종식되는데, 페스트가 사라진 이유가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소설의 서술자는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해, 이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고 언급한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힘도 가득하다"고 한 헬렌 켈러의 말이 떠오른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최선을 다하는 방역 당국,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선량한 시민들, 이 모두가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으나 코로나19를 극복할 우리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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