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 문학동네 / 1만2천500원

일명 ‘보라색 치마’는 화자인 ‘나’가 사는 동네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인이다. 언제나 같은 옷차림에 며칠씩 감지 않은 듯 푸석푸석한 머리를 하고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상점가에 나타나 빵집과 공원을 들른다. 상점가 사람들 사이에는 보라색 치마를 하루에 한 번 보면 운이 좋고 두 번 이상 보면 운이 나쁘다는 징크스가 돌고, 동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몰래 다가가 그녀의 등을 때리고 도망치는 놀이를 한다. 

평소 스쳐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눈길도 마주치지 않고 뚜렷한 직업 없이 오래된 빌라에 혼자 사는 보라색 치마는 모두가 알면서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뒤를 밟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공원에서 늘 앉는 벤치에 구인정보지를 가져다 놓는 물밑작업 끝에 ‘나’가 객실 청소원으로 일하는 시내 호텔에 보라색 치마를 취직시키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염원대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도 말 한 번 붙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일터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건대, 어째 보라색 치마는 생각보다 사회성이 좋은 것 같다.

소설 초반에 ‘보라색 치마’는 마치 도시전설의 주인공처럼 불온한 존재로 그려진다. 빈곤한 생활환경이 엿보이는 겉모습에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도 갖추지 못한 듯한 그녀를 묘사하는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현실에서 한 번쯤 목격했을 법한 거리의 기인이나 사회부적응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정기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사회에 편입된 보라색 치마가 점점 정상성을 찾아가면서 오히려 읽는 이를 불안하고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건 ‘나’ 쪽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상대의 일상을 염탐하고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엿보는 소설 속 화자의 시선은 때로 지나치게 진지해서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서는 SNS 등에서 실시간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면서 현실에서는 아무런 접점도 갖지 못하는 현대사회 속 파편화된 인간관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일인칭 시점의 한계와 함정을 신선한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매력적인 모순을 지닌 주인공을 만들어 낸다.

이 책은 2019년 하반기 일본 현대문학의 지표이자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로 통하는 ‘아쿠타가와상’ 161회 수상작이다. 저자 이마무라 나쓰코는 2010년 데뷔 후 단 두 편의 장편소설과 한 권의 소설집으로 미시마 유키오 상, 다자이 오사무 상, 노마문예신인상 등 주요 문학상을 차례차례 수상하며 입지를 넓혀 왔다. 주위 현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과 특정 사회와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문학적 보편성을 인정받으며 현재 일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 민음사 / 1만8천 원

네이버 오디오클립 문화예술 분야 1위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이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범죄 영화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자로 소비되고 마는지, 지금 우리 주변의 소외된 사각지대가 어디인지를 주의 깊게 살피며 ‘우리 같은 약자를 위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을 함께 논의하게 만든다.

1부에서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용어 ‘가스라이팅’이 무엇이고 영화 바깥의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가부장제 속의 남편이 어떻게 아내에게서 자기 주도권을 빼앗고 장기간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리고 한국의 법이 가정폭력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심도 있게 논의한다. 

또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등을 통해 전 국민의 공분을 산 불법 동영상의 근원을 파악한다. 저자는 사람을 사고파는 사회의 결말은 다같이 망하는 길뿐임을 강력히 주장하며 옆집 아이가 사고팔리는 것을 내 일이 아니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또한 성범죄에서 우리 사회가 곧잘 저지르는 ‘피해자다움’의 강요, 스토킹 방지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 등 저변에 만연한 의식이 옳은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노래를 불러서 네가 온다면
416합창단 / 문학동네 / 1만7천500원

4월이면 그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눈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바다에서 벌어진 그 참혹한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이 흘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을 문득 떠올리고 가끔 추모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 모든 날 모든 계절이 4월이 돼 버린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바다에서 떠나보낸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바다에 뛰어들어 천천히 잠겨 가는 배를 건져올리고 싶은 그날. 울고 울고 또 울다가 엄마·아빠들의 울음은 노래가 됐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을 이름과 가슴에 새긴 세월호 유가족들의 합창단 ‘416합창단’의 노래 및 이야기가 담긴 책과 CD가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두고 출간됐다.

416합창단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의 부모, 그리고 일반 시민단원들이 함께 화음을 이뤄 노래하는 합창단이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작은 노래모임에서 시작된 416합창단은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현장은 물론이고 이 땅에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이 책에는 416합창단이 직접 녹음한 10곡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합창곡이 CD로 수록돼 있으며, 416합창단원들과 그들이 보낸 시간을 파노라마처럼 기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을 찾아가 마음을 함께 했던 김훈·김애란 작가가 416합창단의 노래를 듣고 세월호에 대한 에세이를 집필해 책을 완성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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