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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철 시인/(전)인천시 국제경기지원관
  • 기호일보
  • 승인 2020.04.22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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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철 시인
최계철 시인

강직함으로 배를 삼고 근면으로 노를 삼아 세파를 헤쳐 나간다는 것은 옛 고고한 선비들에게 어울리는 문구일 것이다. 이 문구를 드론과 5G,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이 떼로 모여 사는 현대에 유용한 처세로 어울릴 법한 것인가.

혹 마음으로는 모르되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자진해서 의무처럼 실천하는 이들은 거의 드물 것이다. 간혹 기인처럼 실천하는 사람들도 그와 못지않은 다른 유혹과 갈등을 다독거리며 오히려 그를 놓아줘서 느끼는 것 이상으로 잃는 것도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명리를 초개와 같이 여기고 의롭지 않게 얻은 부와 명예를 뜬구름처럼 여기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일기장 표지에 써 놓기도 했었다.  

최근 벼루함을 하나 더 구했다. 늙은 오동나무로 만든 것인데 낡고 모서리는 문드러진 것이다. 손때와 굴곡졌을 세월이 빚어낸 검붉은 색이 깊은 무엇을 느끼게 한다. 옛 선비들이 무현금을 걸어놓고 사념에 잠기듯 벼루함을 곁에 놓고 옛 선비와 마주한다. 

얼마 전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조선시대 도자기 주병을 하나 얻었다. 도공이 실수한 것인지 일부러 저지른 것인지 모르겠다. 요즈음은 작품으로나 전시용으로 가끔 유약을 바르지 않고 초벌만 한 것을 한 번 더 구어내기도 한다지만 옛날에야 무슨 선시회가 있었겠는가. 아마 깜빡했거나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슬쩍 가마에 집어넣었으리라. 흐릿하게 남아있는 포도 그림을 감상하며 시간을 잊는다.

김득신(金得臣)의 야묘도추(野猫盜雛)를 비단에 그럴싸하게 모사한 물건이 우연히 안겨왔다. 긴 곰방대를 쳐들고 있는 사내의 눈매가 더 날카롭다. 병아리를 입에 물고 달아나는 고양이는 원본과는 다르게 곰방대 끝을 바라보고 어미닭은 사내 옆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른다. 덕분에 단원, 긍재, 혜원 등 조선시대의 그림을 원 없이 감상한다. 

저녁을 먹고 바리스타 2급의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작자미상의 옛 산수화 그림을 꺼내본다. 그 그림 밖이야 춥고 음산하겠지만 기실 겨우 가로 세로 30여 ㎝밖에 안 되는 그림이라 해도 그 안은 거침없이 광활하다. 아득하기만 한 산,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 산길, 그리고 고적한 산사, 한참을 찾아야 보이는 신선일 사람들, 하늘인지 강인지 떠 있는 배에 올라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현실을 혼동한다.

화공들은 화필을 들고 스스로 빠져 허우적대다 밤이 이슥해져야 현실로 돌아왔으리라. 현실과 이상을 혼돈하거나 이상을 더 존중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었을 그 당시가 아니었겠나.

내 취미는 거의 혼자 즐기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외려 그런 취미가 더 유용하다는 생각이다. 무리하게 수집하는 도자기와 반닫이며, 돈궤며, 서류함이며, 서안이며, 빗접이며 옛 그림들은 어쩌다 나에게까지 온 귀한 것들이기에 쓰다듬으며 아까워한다.

아무리 귀한 인연도 둘이 맞아야 엮어지는 법이니 필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레라. 누가 그랬다고 한다. 젊어서는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신처럼 늙어가는 오래된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도자기에 대한 관심도 고가구나 그림에 대한 관심도 얼마 가려는가. 유한한 인생의 후반기를 더듬어 내려가며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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