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이선신 농협대학교 총장(직무대행)

21대 총선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92년 14대 총선 이후 가장 높은 66.2%의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사전투표율도 26.6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높아진 국민들의 참정의식에 갈채를 보낸다.

총선 결과는 여당의 압승 곧 야당의 참패였다. 이 결과를 두고 ‘놀라운 이변’, ‘의외의 결과’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야당에서는 이번 선거를 겨냥해 줄기차게 ‘여당 심판론’을 내세웠지만, 국민들은 도리어 ‘야당을 매섭게 심판한 결과’를 내놨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일부에서 얘기하듯 ‘보수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의 주류가 ‘박정희 프레임’을 근간으로 하는 보수·산업화 세력에서 진보·민주화 세력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있고, "50대의 진보화가 정치 지형을 싹 바꿨다"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가 하면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진화 과정이라는 시각에서 이번 총선의 의의를 바라봐야 한다면서 ‘정치한류(政治韓流)’의 가능성마저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또한 이번 선거결과의 긍정적인 변화 요소들로 청년 정치인 약진, 여성 국회의원 증가, 막말과 몸싸움 정치인 철퇴, 올드보이 퇴장 등을 든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계몽과 상식의 승리’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꾸준히 계몽을 실천해 왔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지기까지 이러한 계몽의 실천은 부단히 지속돼 왔다. 그리고 이번 선거 결과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수도권 시민들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서울, 인천, 경기지역의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여당이 압승한 것은 수도권 시민들의 ‘깨인 양심’의 선택 결과다. 더 이상 불합리와 비상식과 억지논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야당에 대한 심판으로 표출됐다. "미래통합당은 좀비정당이 됐다. 해체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세연 의원의 발언을 미래통합당은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수구꼴통’, ‘꼰대정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해야 830세대(80년대생-30대-00년대 학번)에 어필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쨌거나 이번 선거가 우리 역사 발전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4·19 혁명 60주년을 맞아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60년 전 4·19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아 더 민주화된 나라, 더 정의로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여당에 두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 자신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든든한 국민의 성원이 있지 않은가. 경제정책이든 대북정책(철도연결, 관광사업 등)이든 국민에게 그 당위성과 경위를 잘 설명하면서 소신껏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조심해야 할 때는 역시 조심해야 한다. 특히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에는 유리그릇 다루듯 신중해야 한다. 오만과 분열에 의해 초래했던 열린우리당 시절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특히 헌법 개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시급한 사안은 아니다. 

경제 활성화 등 중요한 정책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만일 헌법 개정을 추진하면 다른 이슈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 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정작 시급한 개혁을 추진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헌법 개정에 연연하지 말고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국정과제를 잘 마무리하는 데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도 거론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우선순위를 잘 가려 로드맵을 세워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