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총선이 끝났고, 발목 잡던 야당은 지리멸렬, 여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뒀다. 전체 의석의 3/5을 넘어서는 공룡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여당은 헌법 개정을 의결하는 것 말고 국회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결과는 여당이 잘해서 만들어 준 걸까?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초유의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힘을 보태준 걸까? 아니면 반대 외에는 대안이 없는 야당을 심판한 걸까? 그 답은 이번 선거를 지휘했던 이낙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의 인사말에 잘 녹아 있다.

그는 "국난에 잘 대처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저희 당을 지지하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의 뜻을 헤아리며 일하겠다"고 한 그 인사말이다. 밤이 이슥해 승패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낙연다운 정치적 사려가 물씬 풍기는 그 말을 100% 받아들이긴 어렵겠으나 그렇다고 정치적 수사로 치부해서 볼 일도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초기에 다소 미숙했다. 마스크 대란도 있었고, 해외 입국자 금지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다. 하나 국가가 적극 사태에 개입하면서 투명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우리 나름의 방역 모델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갔다.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치밀하고 광범위한 검사와 체계적 감염자 추적 및 격리를 통해 상황을 관리했다. 국제사회가 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 건 당연했다. 코로나19 리더십에서 문 대통령은 세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압도했던 것. 물론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의 힘, 민간의료 자원의 기민하고 헌신적인 역할,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단단히 거든 결과로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의 정치적 수혜자는 집권 세력이었다. 이 자산은 당분간 위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데 큰 힘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지금 우리는 온 나라가 힘을 합친다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적 난제가 수두룩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 3% 이하로 떨어질 것이고, 한국도 마이너스 1.2%로 전망한다. 마이너스 성장은 산업생태계를 마비시키고 일자리를 붕괴시켜 국민들의 생활 전반을 빈사 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이런 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코로나19 이후 예상하기 힘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해야 하는 온갖 어려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따라서 국민이 기댄 안정화의 바람이 언제 실망과 분노로 바뀔지 모르는 엄중한 시간이다.

이낙연의 두 번째 메시지 "저희 당을 지지하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의 뜻을 헤아리겠다"는 말도 간단치 않다. 참패한 야당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보수의 가치마저 내동댕이치면서 발목잡기와 막말에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계속한다면 협치는 공염불이 될 것이고 다시 우리 정치는 3류가 아닌 4류, 5류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야당이 수권 능력을 가진 상식의 정치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건 국가적 비극으로 이어질 텐데 과연 그들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는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이번 한 번만……’ 사죄하고 나서 깨끗이 잊어버리는 고질적 야당병이 도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건전한 보수세력이 힘을 얻지 못하면 이낙연의 두 번째 메시지는 소용이 없다. 또한 거대 여당은 권력의 속성이라는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교만과 독선, 자칫 더 사납고 민감해질 수 있는 정치적 유혹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이낙연의 정치적 교양보다 강경파들의 정치적 모험론이 득세할 소지가 충분하니까. 

정말 한심했던 20대 국회는 끝났다. 3류 정치의 무대는 이달로 끝나고 다음 달 30일에는 21대 국회가 첫 발을 뗀다. 새 국회는 지난 20대의 교훈을 깊이 새겨 민생·개혁 법안을 손보는 일부터 시작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를 실현해야 한다. 제발 3류 정치의 막을 내리고 1류 시민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난을 극복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21대 국회로 자리 잡기를. 새 국회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일류 정치를 위해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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