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19는 인류의 문화와 인식은 물론 관행이나 제도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정치나 정부의 역할, 시장의 기능까지도 접근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신속히 개발된다면 모를까 우리나라만 성공적으로 대처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의 진행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문화, 사회, 정치적 변화의 폭과 깊이는 넓고 깊어질 것이다. 

대량생산과 표준화된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변화와 함께, 대면 소통과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던 세계화는 인터넷 통신 라인을 기초로 하는 비대면 소통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교육부는 개학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싱가포르의 사례를 볼 때 아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온라인 수업과 비대면 강의는 교육방식의 대세가 될 것이며, 온라인 수업의 효과를 높이고 온라인 취약계층 및 저학년에 대한 미비점을 보완한다면 IT 환경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온라인 교육 환경의 세계적 선구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나 교수로부터 일방적으로 선행지식을 전달받는 수업으로부터 학생 스스로 연구하고 길을 찾는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것은 이미 선진국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의 큰 흐름이다. 서당식 교육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교육정책은 획일적이고 대량화된 인재양성에서 개별화되고 특화된 인재양성으로 교육정책의 방향이 바뀔 필요가 있고, 홈스쿨링의 허용 여부에 대한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 다만 이런 중장기적인 문제들보다 시급히 살펴야 하는 것이 서민들의 삶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중소상인, 저소득층은 물론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들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아주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정부의 지원이고, 재난지원의 핵심 가치는 신속성과 효과성에 둬야 한다. 

정부, 여당과 야당이 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지금 벌이고 있는 언쟁은 응급실에 실려 온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링거 하나 놔주면서 티격태격 싸우는 꼴이다. 환자는 죽어가고 있는데 논리 타령, 이념 타령, 자존심 싸움이나 하고 있다. 총선거 전에 소득 하위 50% 미만의 국민에게 선지급하고 나머지 쟁점들은 선거 후에 정리했어야 한다. 선거 때 여당은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야당 대표는 더 나아가 1인당 50만 원을 지급하겠다더니 여당 주장은 기재부가 반대하고 야당은 조변석개다. 정치인들의 거짓말 아니면 표를 매수하기 위한 일종의 기망행위가 돼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는데 불신을 더 쌓고 있다. 한편으로는 야당의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대표가 1인당 50만 원 지급이라는 말만 안 했다면 더 타당한 지적이었겠지만, 과도한 지원금은 국가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수습되고 더 이상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 없다면 그렇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이 되고 2차, 3차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소득주도성장 및 복지지출 확대로 어려워진 재정 상황에 세수까지 감소할 것이 분명하다. 기재부장관의 소신 또한 국무총리의 겁박으로 물리칠 일이 아니다. 여당도 재정부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대책이라는 것에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소득 상위 30% 국민의 자발적인 기부를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재난지원금 취지 중 하나가 소비 활성화라면 스스로가 모순이다. 소득 상위 30% 국민은 세금도 많이 내는데, 받은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사럼처럼 몰아가는 것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주는 척하면서 빼앗는 것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국가가 갑자기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추가적인 재정 지출이 없다면 기부니 뭐니 따지지 말고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 맞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하고 중소상인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취지라면 차라리 소득 하위 50% 이하의 국민에게 증액해서 내일이라도 지급하는 것이 맞다. 조금 지나면 파도처럼 밀려올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애로를 해결해주고,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정치한다고 미룰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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