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이나타운(1974)’은 여러모로 유명한 작품이다. 우선 이 영화는 시나리오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플롯 구조가 탄탄하다. 당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지만 같은 해 발표된 ‘대부2’에 밀려 각본상 하나만 가져갈 수 있었던 비운의 작품으로도 손꼽힌다. 그리고 배우 페이 더너웨이의 치명적인 매력과 탐정 역의 잭 니콜슨의 시니컬한 연기가 만나 팽팽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모두를 뛰어넘는 유명세는 감독이 차지하고 있다. 2003년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트로피를 받으러 미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까닭은 아동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럽으로 망명해 여전히 활발하게 창작 중인 이 감독은 올해 초 프랑스의 권위 있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감독과 그 작품에 대한 평가를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오늘은 로만 폴란스키의 대표작인 ‘차이나타운’을 소개하려 한다. 결국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1937년 사립탐정이라 하지만 흥신소에서 일하는 기티스는 LA 수도국 수석엔지니어인 멀레이를 미행해 달라는 한 여인의 의뢰를 받는다. 자신을 아내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남편이 바람난 상태라고 말한다. 기티스는 돈을 받고 멀레이를 미행하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그러다 젊은 여성과의 만남을 포착한다. 이후 본인이 찍은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이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며 한 여인이 기티스를 찾아온다. 그녀는 자신을 멀레이의 진짜 아내 에블린이라 소개한다. 

기티스는 자신과 멀레이가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하고 멀레이를 찾아가지만 그는 익사체로 발견된다.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린 강바닥에서 익사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기티스는 멀레이의 의문사에 다가갈수록 죽음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멀레이의 동업자이자 에블린의 아버지인 노아 크로스의 돈과 권력이 막후 세력임이 드러나고 가족의 추악한 비극도 함께 밝혀진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치정 사건으로 둔갑한 권력형 비리와 타락한 탐욕의 실체를 파헤치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탐정물이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사건이 악화되고, 해결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부조리한 세계를 다룬 이 영화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가족사의 비극을 폭로하는 충격적인 대사와 추악한 범죄의 실체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염세주의적 세계관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이견이 없는 폴란스키 감독의 대표작이자 1970년대 누아르 영화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영화를 한데 묶으면 불편함이 몰려온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만의 작품은 아니다.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의 땀과 노력이 영화 한 편을 만든다. 따라서 감독의 악명으로 작품 전체를 폄훼할 순 없다. ‘차이나타운’의 원죄가 탐욕이었듯, 감독의 원죄 또한 탐욕이다. 비록 영화는 씁쓸하게 끝났지만 노년의 감독은 더 이상 명성 뒤에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야 할 때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