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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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네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5.2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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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던 지난달, 거동이 불편한 영국의 100세 노인이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을 돕겠다고 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출신이기도 한 그 노인은 자신의 100세 생일을 기념해 왕복 25m 정도인 뒷마당을 100회 걷는 조건으로 1천 파운드(약 150만 원)를 모금하겠다고 약속했다. 몸이 불편한 100세 노인의 엉뚱한 계획에 자손들은 무엇보다 걱정과 우려가 더 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막상 100회를 걷는 동안 이 소식이 전국으로 전해지면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목표액의 3만2천 배가 넘는 3천20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무려 480억 원이 넘는 성금이 모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축하카드와 함께 격려 편지도 14만 통 넘게 도착했다고 한다. 영국 정부까지 나서서 100세 노병(老兵)에게 ‘역경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당신은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롤 모델 (role model)’이라며 최상의 존경을 표했고, 공군은 그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시각, 집 위로 축하비행까지 했다고 한다. 성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유명인사가 된 그는 ‘나에게 큰일을 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관심과 너그러움이 훨씬 크다’면서 고마움을 표했다고 한다. 동화 같은 100세 노인의 감동적이고 훈훈한 이야기는 진짜 동화가 돼 아무래도 먼 훗날까지 전해지게 될 것 같다.

각급 학교 개학이 계속 미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될 무렵, 전국 동시 시행은 처음인지라 여러 곳에서 혼란이 적지 않았다. 특히 형편이 어려워 컴퓨터를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한 부모들은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중고 컴퓨터를 취급한다는 사람의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어느 날 경상도 칠곡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그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인 자신의 딸아이가 서울에서 할머니와 같이 사는데, 인터넷 수업을 들으려면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며 중고 컴퓨터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며칠 후, 그는 쓸 만한 중고 컴퓨터를 구해서 칠곡 아주머니의 딸이 산다는 집을 찾아갔다. 다세대주택 작은 문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그를 맞아 줬다고 한다. 집안에 들어가며 둘러보니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다. 작은 책상 위에서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는데 칠곡 아주머니의 딸인 듯한 아이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무척 기뻐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이가 차 있는 곳까지 나와 인사를 하고, 학원이라도 가려는지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출발하려다 혹시나 하고 물어보니 마침 같은 방향이라서 데려다 준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사양을 하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컴퓨터를 설치해준 아저씨라 마음이 놓이는지 차에 올라탔다. 10분쯤 후,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하며 차에서 내렸다. 어디가 아픈지 몹시 불편해 보이는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급히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출발하려던 그는 무심코 아이가 앉았던 자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물인가 하여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그냥 갈까 하다가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잠시 후 달려온 그의 아내는 약국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간 혼자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엄마들은 대개 딸 아이의 첫 행사 때에는 그렇게 한다면서 근처 꽃집에 가서 예쁜 꽃이라도 사오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온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는 그때까지도 화장실 안에서 혼자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물론 아내의 얼굴에도 눈물 자국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갑자기 컴퓨터 가격을 물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의견대로 다시 돌아가 중고 컴퓨터값이 내렸다고 하면서 할머니에게 반값을 돌려 드리고 왔다. 

그날 밤늦게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도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내 역시 옆에서 눈물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고 한다. 

세계인에게 감동을 준 영국 100세 노인의 사연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이상으로 진한 감동을 주는 사연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마다 대기업이나 유명인사들이 나서 큰 액수의 성금을 내놓곤 하지만 마치 당연한 듯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고 크게 감동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시민(小市民)들의 작은 미담(美談)에는 오히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서로 위안하며 격려한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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