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 간 예술가들은 당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BBC가 선정한 영국의 위대한 작가 2위에 오른 제인 오스틴도 그렇다. 42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단 6편의 작품을 발표한 그녀는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으며, 평단의 비평 또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녀는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을 만큼 자국민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7년에는 사후 200주년을 맞이해 10파운드 신권 지폐의 인물로 선정됐다. 남녀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진부하고 통속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담은 그녀의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꾸준히 각색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아닌 작가의 실제 연애담을 바탕으로 로맨틱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창작의 영감이 된 작가의 삶과 사랑을 만나 보자.

18세기 말 영국.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제인은 위슬리의 구애를 받지만 그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실 위슬리는 매력은 다소 떨어졌지만 상속받을 막대한 재산 덕분에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혔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제인의 부모는 딸을 유복한 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제인은 청혼을 거절한다. 

가족 파티가 있던 날, 글쓰기를 좋아하는 제인은 언니의 행복을 비는 축사를 자랑스럽게 낭독한다. 그러나 런던에서 온 톰 르프로이는 제인의 글이 자아도취에 빠진 시골 감성이라고 혹평한다. 제인은 무례하고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르프로이를 상종 못할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만남이 쌓여 갈수록 호감이 싹튼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르프로이와의 대화는 즐거웠고, 두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웃음코드도 잘 맞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배우자도 없을 거라는 서로의 믿음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발목이 잡혔다.

사실 르프로이도 후견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한 청년으로, 런던에서 법 공부를 하는 그는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조건보다는 진심 어린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돼야 한다고 믿어 온 제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야반도주하자는 르프로이의 제안을 아픈 가슴으로 거절한다. 이후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과 르프로이를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을 발표해 전문 작가의 길을 걷는다.

영화 ‘비커밍 제인’은 그녀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과 닮았다. 실제와 허구를 결합해 재구성한 이 영화는 그녀의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를 여전히 환기시키고 있다. 당시 여성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도 제약이 따랐다. 따라서 여성의 삶은 전적으로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당시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조건이 앞서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했다. 이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연애소설 형식으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현실적인 문제로 제인 오스틴은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당시 제약과 편견에 맞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했다. 그리고 영미문학에 길이 남을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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