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리처드 닉슨(37대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44대 대통령)까지 공화당·민주당 출신 정당에 관계없이 이어진 미·중 협력 기조가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밝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 쇼’가 아니라 미국 집권 세력이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돌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중국 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 시달릴 나라는 당연히 양 세력권에 끼인 한국이 될 것이다. 미국과 안보동맹이지만 경제에서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은 양 세력이 충돌할 때마다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 북·미 협상과 별개로 남북 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했다. 북핵과 남북평화를 분리하겠다는 결단이다. 통일부는 5·24조치의 실효(實效)를 확인했고, 북한 사람을 만날 때 신고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규를 바꾸기도 했다. 전향적 조치임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규정하는 작업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한마디로 미래에 하나가 돼야 할 이상을 담았다. 상대를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런 점이 ‘과잉 정치화’를 지속시켰다. 

중국 삼국시대 강동의 노숙은 소위 ‘천하2분론’을 내세웠다. 우선 장강의 이점을 살려 남쪽에서 체제를 다지면서 뒷날의 기회를 보자는 주장이다. 촉한의 제갈량은 여기서 더 나아가 ‘천하3분론’을 내세웠다. 조조의 북쪽 세력을 인정하고 동남방의 손권 세력도 인정하면서 서쪽의 파촉 땅을 근거지로 삼아 미래를 내다보자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통일로 가는 전략적 방법에서 주장했으나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도 많다. ‘1민족 2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절차다. 

예를 들면 남북이 동·서독처럼 상호 체제 인정, 내정 불간섭, 상호 불가침 등을 담은 기본조약을 체결하는 것 등등이다. 물론 한반도에서 두 나라가 공존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기에 저항감이 클 것이고, 상대를 무찌를 세력으로 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집착 세력의 반발 역시 엄청날 터. 하지만 남북이 ‘갈라서기’를 함으로써 우리는 ‘사실상의 미래 통일’이라는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남북의 통일 단계 설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연합―연방제―완전통일을 주장했다. 이른바 ‘김대중 3단계 통일론’이다. 일각에서는 화해협력―남북연합―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기도 한다. 20년 전 남북의 정상은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남북이 분단되면서 남과 북의 정상이 서명한 최초의 문건이며 이를 실천에 옮긴 최초의 합의서였다. 이런 토대 위에서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의 입장과 국제정치의 격변 상황에서 외교적 공간을 마련함은 물론이고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분명한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정책적 우선순위가 어떻게 달라지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남북이 갈러서자. 통일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한 민족 두 국가’의 미래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국제질서가 미·중 신냉전 구도로 재편될 때 우리 한반도에서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제도와 규정을 철폐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고 공존하게 된다면…….

김대중 대통령과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관련 기록에 김정일 북한 지도자에 대한 평이 나온다. 특사로 평양에 갔던 임동원이 보고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견이 있고 두뇌가 명석하며 판단이 빨랐습니다." 그 결과가 김대중의 햇볕에 김정일이 외투를 벗었던 것이다. 남과 북이 한 민족임을 인정하면 할수록 2국가의 갈라서기도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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