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조 인천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윤병조 인천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교통정온화(Traffic Calming)란 ‘교통을 조용히 시킨다, 진정시킨다’라는 의미로, 보행자에게 안전한 도로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물리적 시설을 설치, 자동차의 속도와 통행량을 줄이는 기법이다. 교통정온화 시설은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돼 많은 나라들이 이를 통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교통정온화 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교통안전 종합대책(2018) 세부과제로 포함시켜 추진했다. 교통정온화가 유럽에서 처음 도입된 곳은 ‘주거지’였다. 당시 유럽도 차량중심의 교통정책이 추진되던 시기였다. 차량이 증가하고 도로에서 수용하지 못한 차량들은 주거지로 우회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또 높은 속도로 통과하는 차량들로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주거지를 중심으로 교통정온화를 도입했고 그 결과, 교통사고가 현저히 감소함은 물론 주거지를 통과하는 차량들도 우회해 교통량이 많이 감소했다. 교통정온화 시설은 자동차의 통행량을 줄이고 낮은 속도로 운행이 필요한 구간에 설치하는 시설로 ▶지그재그 형태의 도로 ▶차로 폭 좁힘 ▶교차로 폭 좁힘 ▶과속방지턱 ▶고원식 교차로 ▶고원식 횡단보도 ▶포장면 표면처리 ▶진입 억제시설 ▶소형 회전교차로 등이 있다. 그동안 이 시설은 보호시설 중심으로만 설치됐지만, 해외는 주거지·도심지·국도 등 보행자 안전이 필요한 곳에 설치됐다.

현재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해 4천 명 이하(2018년 기준)로 진입했다. 반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자동차 및 주행거리 증가, 사고 발생 시 합의보다 신고 증가 등의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사망자 수 감소는 의료기술 발전과 응급구호 시간 단축, 자동차 안전장치의 강화 및 도로환경 개선 등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인구 10만 명당 9.1명, 자동차 1만 대당 1.9명 등으로 OECD회원 35개국 중 32위로 최하위권이다. 이런 여건 속에 정부는 2018년 교통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2천 명 수준으로 감축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특히, 사람 우선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선진국형 속도관리체계를 조기 확산하고, 보행자 우선 교통체계로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정책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교통정온화 시설 설치를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 중반 지구교통개선사업에서 교통정온화라는 말이 처음 소개됐다. 당시 교통정온화 기법은 법적 근거와 예산 부족으로 주차구획선 정리 수준에만 머물렀다. 또 2000년 후반 정부에서 ‘생활도로 Zone 30 시범사업’, ‘대중교통 전용지구 조성사업’, ‘보행우선구역사업’ 등 보행자 중심의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정부는 보행자 중심의 사업을 효과적으로 이끌기 위해 선진국 교통정온화 기법을 근거로 ‘고원식 교차로 및 횡단보도’, ‘과속방지턱’ 등 차량 속도 저감을 위한 교통정온화 시설 중 일부만 적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안전속도 5030’의 법제화까지 이뤄졌다. 교통정온화 시설은 도로가 직접 운전자에게 속도를 줄이라고 메시지를 주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교통정온화 시설을 한꺼번에 설치할 수 없다. 보행안전 관련 사업들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설치하고 나아가 교통정온화 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이 별도로 나와야 한다. 교통정온화 시설이 유럽에서 처음 도입될 때도 ▶주차문제 ▶소방차·쓰레기차 등 대형 차량 진입 문제 ▶재원 조달 문제 등 많은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이 있어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차량속도 감소와 주거지를 통과하는 차량들의 우회였다.

국내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어린이·노인보호구역, 마을주민 보호구간 등 각종 사업들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재생사업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서 보행안전을 위해 교통정온화 시설 설치가 확대돼 정부가 목표하는 교통사고 사망자수 2천 명 수준까지 감축하는 초석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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