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이 지난 10일 오후 11시께 별세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등 분수령이 되는 주요 전투를 지휘한 전쟁 영웅이자,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쟁 후에도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이날 오전엔 또 다른 비보도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북악산 인근 산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인권운동과 부패정치 청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호사업에 젊음을 바친 이 시대의 사회운동가였다. 2011년 서울시장에 재임한 후에도 반값 등록금, 다문화가족 지원 확대 등 소외받는 계층을 위한 사업에 노력해왔다. 삼가 명복을 빌며, 편히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안타깝게도 고인들의 예우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고 백 장군은 친일 행적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있느냐는 반대 여론이 있다. 고 박 시장은 부하 여비서 성추행 고소사건이 알려지면서 서울시민장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3일 만에 56만여 명(7월 13일 기준)을 넘어섰다. 일리 있는 얘기들이다. 이번 고인들의 죽음이 특히나 아쉬운 건 자신들의 의혹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참회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행하지 않았다. 

친일 행적이든 성추행 의혹이든 문제 제기가 있었다면, 본인이 직접 진실을 밝히고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이것을 건너뛰고 가족에게만 혹은 자신의 진영에게만 할 말하고 가버리니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인의 삶은 범부의 삶과 차원이 다르다.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히고 평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적인 미담이나 사소한 허물 정도야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국운을 바꾼 혁혁한 공(功)이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 과(過)는 덮고 넘어가선 안 된다. 

진실을 밝혀야만 역사의 교훈 또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고인들은 진실을 밝히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떠났기에 그들의 허물은 피해자 중심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역사에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으면 한다. 포장하거나 감추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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