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몇 달 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설왕설래다.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내용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공화당 주지사들과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상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한국 국민은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미국이 그들(한국)을 왜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내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발언 당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을 앞두고 한국과의 밀당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발설한 즉흥적 화풀이가 아니었겠느냐"고 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긍정적인 언급을 했으나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속내가 드러난 것으로 결국 양국 정상 간 소통과 공감이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의 그날 발언이 즉흥적인 화풀이성 발언인지 아니면 진짜 속내를 드러낸 토로인지는 불분명하나 확실한 건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일련의 언행과 결부시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고 문제는 더 크게 키워 이익을 취하는’ 이른바 ‘거전보과(鋸箭補鍋)’ 방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대표적인 두 인물, 조조와 유비를 두고 ‘속내는 시커멓기 이를 데 없고 얼굴 가죽은 매우 두꺼워 수치심을 모르는 것이 영웅이다’고 설파했던 후흑학(厚黑學)의 이종오 선생이 지적한 ‘판사이묘(辦事二妙)’의 수법 말이다. 그러니까 일을 처리하는 두 가지 기묘한 수법은 일단 시늉만 하고 책임질 일은 절대로 않고, 문제점은 잔뜩 키운 후에 해결해 준다.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않으면서 유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시늉만으로 역량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누군가 화살을 맞았다. 화살이 꽂힌 채 치료 받으려 가니 톱으로 화살대를 잘라내고 ‘다 됐다’고 한다. ‘그럼 살 속에 박힌 화살촉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건 내 소관이 아니라 내과 의사에게 가라’고 대꾸한다. 이른바 ‘거전(鋸箭)’이다. 화살대는 잘랐으나 정작 중요한 치료의 책임질 일은 않는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좋은 사람’이라고 극구 칭찬하면서 우리 대통령은 ‘상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끔찍하다’, ‘왜 우리가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필요할 때가 되면 ‘한국은 모범국이고, 한국이 제공한 코로나19 진단 키트가 고맙다’고 한다. 

보과(補鍋)도 그렇다. 솥 땜질의 요령을 즐겨 구사해왔다. 즉, 가마솥에 작은 구멍이 생겨 땜쟁이를 찾아가면 그들은 ‘우선 녹을 벗겨야 한다’면서 망치로 살금살금 계속 두들겨 작은 구멍을 크게 만든다. 녹을 제거하기 위해서라지만 구멍은 계속 커져 ‘하마터면 새 솥을 사야 할 뻔했다’고 하면서 큰 구멍을 땜질해 준다. 솥 주인은 큰 구멍을 보고서야 참으로 고맙다고 비싼 값을 내놓기 마련이다. 문제는 키울수록 좋다. 그리고 나서 해결해 주면 고맙다는 인사도 듣고 돈도 많이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묘수(?) 아닌가.

하긴 트럼프 대통령만 이런 묘수를 즐기는 건 아니다. 이미 1천800년 전에 널리 이용된 방법이고 국제정치에서 흔히 써온 수법이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이종오 선생의 ‘후흑학’을 읽어 봤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껏 역사의 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 치고 속이 시커멓고 얼굴 가죽이 두껍지 않은 인물이 몇이나 될까. 문제는 묘수랍시고 계속 써먹는 그 두 가지가 그래도 은밀하게 이루어지거나 사익을 취하는 영역에서 빈번히 성행했지 아무리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지만 이렇듯 공공연하게 자행(?)되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필자는 지금껏 수많은 ‘미국의 종말’을 주장하는 서적과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어도 설마는커녕 헛소리라고 코웃음 쳐 왔다. 헌데 이번 일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 세계의 리더를 담당하는 미국의 통치자가 분명하고 이런 지도자가 하는 짓이 이 정도라면 필패지가(必敗之家)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가 말이다. 뻔한 것을 못 보고, 경솔하게 바꾸고, 무리하게 휘두르면 미래는 없다.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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