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한국도시농업관리사협회 회장
박진호 한국도시농업관리사협회 회장

같은 사물을 바라보고도 느끼는 관점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에도 그냥 보면 단순한 상업적 행위로 보이나 분명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욕구적 관점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파는 사람’은 단가를 높여,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사는 사람’은 단가를 낮춰, 충분한 시간에 선택해 필요한 소량을 거래하려 합니다. 분명 정반대의 관점이 존재합니다. 도시농업을 농업적 테마로 봐야 할까? 평생교육, 치유, 사회복지적으로 봐야 할까? 텃밭을 생산적 장소로 봐야 하는가? 조경과 미적 대상으로 봐야 하는가? 개발도상국의 관점과 선진국 관점에서 도시농업은 어떤 의미일까?

개발도상국에서는 영양부족과 기아 해결 수단으로 도시농업을 활용하고, 선진국에서의 목적은 다양합니다. 여가와 취미, 보건, 이산화탄소 감소와 자원순환, 미세기후 조절이며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GMO, 환경호르몬 등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한 먹을거리의 직접 재배와 가족, 이웃 간 교류를 통한 공동체 의식 향상 등 문화 활동의 목적도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농업은 선진국형화되고 있습니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도시인구 비율은  90%에 가깝습니다. 삭막한 도시는 일상에서 자연과 단절을 가져왔고 도시농업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습니다. 그렇지만 정원문화가 사라진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도시농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며, 어떠한 체계로 확립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도시농업을 정원 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는 어디일까? 바로 영국입니다. 

영국에서 도시농업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은 도시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지역사회 발전, 경제발전, 교육, 환경개선, 건강, 레저, 지속가능성에  부합한 것이 도시농업입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선언의 실천 계획인 어젠다21은 지구환경 보전 종합 계획으로 환경에 대한 자각도 커지게 됐습니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의 ‘엘로트먼트’는 재배를 위해 임대된 일정구획의 분리된 땅입니다. 엘로트먼트는 개인이 주체이며 형태는 같지만, 경작과 관리 주체가 개인이 아닌 단체이면 커뮤니티 가든이 됩니다. 도시농업의 장소 제공과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원문화를 만드는 엘로트먼트, 그것이 한국도시농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평균 대기자가 25명이 항상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도시농업 텃밭 엘로트먼트!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에 처음 등장해 17세기에도 공유지가 지배계층에 의해 사유화됐습니다. 이에 사회의 불만이 커지고 모든 사람이 땅을 일구는 평등권을 주장하며 윈스턴리는 시위를 주도한 일이 있고 진압 후에도 영국에 큰 경종을 울렸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사유화는 더 심해져 일반인은 교외에서의 극단적인 최저생활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노동을 선택하고 도시인구가 급증했습니다. 19세기 새로운 변화가 생겨 엘로트먼트 같은 땅을 일정 정도 확보하는 법이 규정됐습니다. 이후 영국 정부는 정원이 없는 계층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엘로트먼트를 조성하고, 2차대전 때 ‘승리를 위해 일구자’라는 구호로 식량 부족분을 스스로 해결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냉동식품 유행과 70~80년대 여성에게 ‘주방으로로부터 해방’의 흐름에 가난한 사람의 전유물로 인식되며 엘로트먼트의 관심이 쇠퇴했습니다. 빈민의 땅, 배고픈 자의 언덕, 자선의 땅으로 인식되며 여러 문제를 보이다가 엘로트먼트 대신 레저가든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고 인식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문화의 인식과 정착은 역사의 선배인 어느 누군가의 시도와 움직임에서 이뤄집니다. 현재의 엘로트먼트는 역사를 살았던 인간의 끝없는 시도 속에 이뤄진 걸작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에 의해 발전시켜야 할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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