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 선생님 연구회 운영위원

인천을 소개하는 민요의 일부분을 소개할까 한다. 

용동 기주(妓酒)로 축현을 넘어

율원(栗園)풍류 경아대(景雅臺)가

승지 소성(邵城)이 예이로구나

얼시구절시구 지화자좋은데

인천팔경이 여기 있소

(「한국구비문학대계」, 1984)

특정 지역을 풍류와 결합시킨 후 그곳을 인천팔경이라 한다. 개항기 일본인들에게 인천을 알리는 책자 「신찬 인천사정」(1898)에 기록된 인천팔경 중에서 ‘화개동의 야색(華開洞の夜色)’이 80여 년이 지난 후 지역 민요에 견인됐던 것이다.  

이참에 팔경에 대해 살펴보자. 팔경(八景)은 절경 혹은 승경을 의미한다. 경치가 좋은 공간 중에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곳을 팔경이라 지칭한다. 팔경은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송적(宋迪)이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서 출발한다. 중국에서는 소상팔경을 절경의 대표적인 사례로 여겼다. 많은 시인 묵객들이 팔경시(八景詩)를 창작해 시화일률(詩畵一律)의 동양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베트남도 소상팔경 영향을 받아, 각 지역의 팔경을 선정하고 그것을 시화하는 경향이 생겼다. 

소상팔경이 동아시아의 공통 문화현상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그림에서 시작된 팔경도가 여덟 개의 주제를 한시로 풀어내는 팔경시로, 그리고 단순히 팔경을 선정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림 → 그림+한시 → 한시 → 단순 선정’의 단계를 밟아왔다는 것이다. 한시 형태가 사라지고 민요에 팔경이 등장할 정도로 팔경은 공적 공간이나 규정에서 벗어나 개인 선정의 팔경으로 확장됐다. 

인천팔경의 양상은 해당 지역 광역화 과정과 관련돼 있다. 인천은 경기도에서 분리돼 직할시(1981년), 광역시(1995년)로 승격됐고, 이 과정 중에 옹진군(1989년)과 강화군(1995년)이 인천에 통합됐다. 인천 광역화의 사정이 이러할 때, 전통시기의 인천팔경은 강화십경(심주십경(沁州十景))과 교동팔경, 영종팔경(오가팔영(五嘉八영))과 부평팔경이다. 개항 및 일제강점기에 전하던 인천팔경은 다섯 개인데 출처를 알 수 있는 것(5개)과 그렇지 못한 것(1개)이 있다. 

이후 시기의 인천팔경으로 서곶팔경, 계양팔경, 덕적팔경, 장봉팔경이 있다. 그런데 여러 인천팔경에서 전통시기의 강화십경(심주십경)과 교동팔경, 영종팔경(오가팔영)만이 팔경시로 시화(詩化)됐을 뿐 나머지는 ‘경물명’이거나 ‘공간(장소)+특정대상(혹은 행위)’처럼 소표제로만 제시돼 있다. 전통적인 팔경의 대상은 기러기(雁), 배(帆), 아지랑이(嵐), 눈(雪), 달(月), 비(雨), 종(鍾), 노을(照)이다. 인천팔경의 선정에서 빈도수가 높은 것은 배(帆)와 노을(照)이다. 배 또는 노을이 어떤 공간이나 행위와 결합돼 인천의 절경 혹은 승경으로 견인돼 인천팔경으로 선정됐던 것이다. 

필자는 인천팔경 중에서 노을(照)과 관련된 낙조를 으뜸으로 삼는다. 일출(日出)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태양과 구름, 바다가 조화를 이룰 때 광경을 완성의 아름다움으로 지칭할 수 있기에 그렇다. 불과 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구름이 한데 엉겨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인천은 낙조의 도시이다. 낙조를 감상할 공간은 많겠지만 필자가 권하고 싶은 곳은 인천대교이다. 해질녘 영종도를 향하는 운전자를 괴롭히며, 동시에 온전한 감탄을 짓게 하는 것은 인천 바다 위의 석양빛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태양과 구름, 바다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행복감과 위안을 모두가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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