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형(型)과 여우형(型),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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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형(型)과 여우형(型), 그리고…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20.08.0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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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휙휙 돌아간다.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이 살아있다면 새로운 형(型)을 제시했을까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벌린이 세상사를 하나의 개념이나 지표, 일관된 이론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고슴도치’에 비유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어둡고 좁은 곳을 찾아 웅크려 있곤 한다는 고슴도치의 습성과 외곬으로 한 분야만을 파고드는 연구자들의 성향이 비슷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반대로 변화무쌍한 세상사란 숱한 변수들이 얽히고 얽혀 난마처럼 뭉쳐 돌아가니 일관된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여우형’이라고 명명했다. 의심이 많은 여우의 습성에 빗대어 설명한 것인데 고슴도치형이거나 여우형이거나 어느 쪽이 더 낫다 또는 틀렸다의 구분은 결코 아니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 두 가지 형의 사고방식이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정치심리학자 테틀락은 1988년부터 10여 년 넘게 이 주제를 연구해 왔다. 각 분야의 전문가 284명에게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고 총 8만 개에 달하는 그들의 미래 예측에 대한 사루 결과를 분석했다. 

결과는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이 여우형 일반인에 비해서 예측 적중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고슴도치형 전문가들은 여우형 전문가에 비해 자기의 전공·연구 분야에서조차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소한 안목과 이해,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들의 미시적 변화에 주목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더구나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5년 이상의 중장기적 미래 예측에 있어서는 고슴도치형이든 여우형이든 상관없이 전문가들의 예측이 일반인의 예측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수백만 명 중에서 심지 뽑기로 10명의 리더를 고른 것과 선거 방식으로 뽑은 결과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 예측이나 전망이라고 해서 전문가들의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건 미래 예측에 있어 누구나 신중하고 열린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행정수도 이전을 두고, 전셋값 대란이라면서 앙앙불락하는 정당·단체·개인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직·간접적 요인을 현란하게 제시하는 전문가들, 여기에 맞장구치는 보수·진보 언론들의 엇갈린 보도 내용에 더해져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장까지 광범하게 퍼지고 있다. ‘비판적 소수’ 의견이 무시당한다는 점도 있겠고 절차를 생각하는 국민들이 안중에 없다는 듯이 행동하기 때문이란다.

십여 년 전 이모 변호사가 헌법 소원을 통해 서울이 관습헌법임을 확인했고 수도 이전 정책은 위헌이라고 했던 헌법재판소의 잘못된 판단으로 오늘의 많은 국민들에게 삶과 희망을 꺾어 좌절을 안겨주었다면 헌법재판소는 어떻게 이를 바로잡을 것인가? 국민들과 국가기관이 헌법 재판을 존중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마찬가지로 헌재는 국민들의 삶과 국가기관의 민주적 논의를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조선왕조의 경국대전과 600년의 시간을 그 근거로 삼은 관습헌법은 조선시대의 법이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일에는 실수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편견과 욕심, 어리석음과 독선이 개입된다. 중요한 것은 잘못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다. 민주주의 제도의 근본적 장점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과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정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 중장기 국가정책의 전략이 결정되는 시기에 있다. 안보와 경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 속에서의 선택, 대북 평화노선의 방향, 사회적 질서를 향한 동의에 있어 확증편향에 기반을 둔 동류적 무리지음을 경계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여야 정치인 모두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대안과 토론, 비판적 시각을 받아들여 오류를 최소화하기는커녕 서로 치고받기 바쁘다. 아마 한국에서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 정치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 밥에 그 나물’의 인적자원과 주장에 머물고 있다면 미래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새로운 형(型)이 절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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