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구 인천시문인협회이사
황흥구 인천시문인협회이사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가 점심이나 하자고 해서 찾아간 곳은 화수부두 근처의 허름한 식당이었다. 옛날 밥상 그대로 누추해도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복매운탕, 서대탕, 간자미탕에 구색으로 민어회도 있는 탕 전문점이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간자미탕’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생선이다. 묵은 김치와 된장을 넣고 끓여서인지 시원하면서도 약간 홍어의 삭힌 맛을 연상케 하는 톡 쏘는 뒷맛이 입맛을 자극하기도 하였다. ‘간자미’가 지금은 귀하지만 예전에는 서해 인천 앞바다에서도 많이 잡혔다. 

흔히 가오리 새끼를 간자미라고 불렀지만, 실제는 가오리 중에서도 작은 어종인 상어가오리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바다 밑바닥에 살고 납작한 모양으로 꼬리가 길고 가늘며 대개 마름모꼴이다. 한때 백령도에서 많이 잡혔던 홍어와 다른 것은 홍어는 가오리보다 크고 주둥이가 뾰족하며 둥글면 가오리이다.

인천의 최남단 ‘고잔동’ 바닷가에 인접한 동네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보아온 생선이다. 이것은 갯고랑에 그물을 쳐놓고 물이 빠지면 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걷어 오는데 종종 간자미가 걸려들기도 했다. 잘 손질해 탕으로 끓여 먹기도 하지만 아가미에 대꼬챙이를 끼워 높이 매달아 잘 말려 쪄서 먹기도 하고 양념해 조려 먹기도 했다. 살은 꾸덕꾸덕 굳어서 먹기 좋고 뼈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반 생선과는 다른 특별한 식감이 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맛을 이곳에 와서 맛보다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여름방학이면 친구들과 보통 남동저수지나 소래포구 앞 소래다리 아래 갯고랑에서 망둥이 낚시질을 하였다. 우선 낚시질을 하려면 갯지렁이를 잡아야 하는데 썰물 때 갯고랑에 들어가 두 손으로 깊숙이 넣고 개흙을 파헤치면 굵고 긴 갯지렁이만 골라 소금에 버무려 미끼로 썼다. 어떤 때는 아예 갯고랑에 들어가 갯지렁이를 잡아다 낚시 가게에 팔기도 했다.

큰 망둥이를 많이 잡으려면 어른들을 따라 지금의 오이도 앞바다까지 따라가 낚시질을 했다. 낚시는 물이 나갈 때와 들어올 때 가장 잘 잡힌다. 한번은 한참 잘 잡히는 재미에 물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뒤를 보니 갯고랑은 이미 물이 다 차 있었다. 갯고랑은 한길 넘는 곳도 있어 헤엄쳐 건너야 하는데 한가득 잡은 낚시통과 낚싯대가 문제였다.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데 낚시통을 버리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던 기억과 죽을 뻔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이 어디 망둥이뿐인가? 언제부터인가 조개와 맛을 구경할 수가 없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송도, 척전, 동막, 고잔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났다. 대개 동죽과 가무락이라는 조개를 주로 잡았고 대합보다 작은 상합도 많이 나왔다. 어린 시절에 본 할머니는 허구한 날 갯벌에 나가 조개를 잡아 집에서 일일이 깐 후 머리에 이고 바닷가와는 좀 떨어진 장자골(장수동), 만의골(만수동), 골말(서창동) 일대로 매일 팔러 다니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초인적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잡는 것도 어려운데 한 구럭씩 되는 조개를 등에 지고 무르팍까지 빠지는 갯벌과 갯고랑을 건너고 큰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몇 십리 길을 팔러 다니셔야 했으니….

이제 그 많던 망둥이와 조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1990년대에 시작한 송도신도시 조성으로 갯벌을 매립하고 물길을 막아 간자미, 망둥이, 조개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아나지 못하고 갯벌을 생업으로 살아가던 어민들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것이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며 유해물질을 분해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치유하는 자정 능력을 갖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무분별한 매립을 중단하고 생태의 보고이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가진 갯벌을 보호하고 해양생태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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