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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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을 아시나요?
이재훈<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8.1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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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상수도라는 것이 없어서 가까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바닥이 얕고 물이 넉넉한 우물에서는 바가지로 물을 손쉽게 퍼낼 수 있었지만,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우물에서는 도르래에 매달린 두레박으로 힘겹게 물을 퍼 올려야 했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그나마 괜찮았으나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는 물 길어 나르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우리 집 마당에도 땅속에 있는 물을 끌어 올리는 장치, 그 당시에는 다들 ‘뽐뿌’라고 부르던 놀라운 기계 ‘펌프’ 가 설치됐다. 그런데 펌프로 물을 퍼 올리는 일이 처음에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펌프로 물을 퍼 올리려면 미리 펌프에 물을 붓고 잽싸게 펌프질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미리 붓던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짐작하건대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마중’이란 말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펌프는 마중물이 없으면 절대로 물을 퍼 올릴 수 없다. 게다가 마중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꾸륵, 꾸르륵’ 소리를 내면서 바로 물만 먹어버리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마중물을 부어줘야 한다. 그래서 여분의 물이 없어 펌프를 앞에 두고도 물을 퍼 올리지 못하는 난감한 일을 종종 겪곤 했다. 마중물은 한꺼번에 부어서도 안 되고, 조금씩 조금씩 부어가며 신중하게 펌프질을 해야 하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두 바가지의 마중물을 넣고 재빠르게 펌프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폭포처럼 힘차게 쏟아진다. 

 국회는 얼마 전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부동산 3법’과 계약갱신 청구권제, 전·월세 상한제, 전·월세 신고제 등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어 소위 ‘임대차 3법’으로 불리는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에서조차 이번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치열하다. 어떤 정책이라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야 효과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평가 방향이 완전하게 상반돼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강남권 재개발 지역에 주택을 사서 수십억 원의 이익을 보고 있는 의원들이나 몇 채, 혹은 몇십 채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을 바로잡아 집 없는 서민들이 작은 집이라도 마련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보겠다고 내놓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과 충돌할 것 같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보통 서민들이 정상적으로 돈을 모아서 수도권에 내 집을 마련하기에는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이런 상황이 그간의 잘못된 주택 정책 때문인 측면도 있겠으나, 더 큰 이유는 집을 투기나 투자 수단으로 여겨 온갖 술수를 일삼아온 사람들의 탐욕적인 행태가 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거주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이 높은 다주택자에 대해 부동산 가격에 비례해서 세금을 올리는 것은 전혀 나무랄 일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상적인 주택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마중물과 같은 정책이라고 믿는다. 수도권 곳곳에 청년이나 노약자 등 집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저가의 집들을 많이 공급하는 일도 그렇고, 생애 최초로 집을 살 때나 일정 금액 이하의 집에는 아예 취득세를 없애거나 줄여주는 정책도 서민들을 위한 마중물 정책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줄(啐)은 병아리가 부화할 때 안에서 껍질을 쪼아댄다는 뜻의 ‘떠들 줄’이고, 탁(啄)은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바깥에서 부리로 껍질을 쪼아 병아리의 부화를 돕는다는 뜻의 ‘쪼을 탁’이다. 병아리가 부화할 때는 알에서 나오려고 껍질을 쪼아대고, 어미 닭은 밖에서 그 신호를 듣고 동시에 껍질을 쪼아서 병아리가 온전하게 탄생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줄(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생활 형편이 어려운 소시민들이나 영세 사업자, 혹은 중소기업인이라고 한다면, 탁(啄)의 역할을 하는 것은 국가나 지자체, 혹은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탁의 역할은 곧 마중물과 다르지 않다. 작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펌프질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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