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이재현 인천시 서구청장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많은 일상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멈춤’이다. 성격 급하고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한국인에게는 도통 익숙지 않은 단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온라인개학·재택근무는 반강제적인 쉼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각종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면서 발생한 공백이 처음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그 쉼이 길어지면서 나를 돌아보는 동시에 서구의 앞날을 고민하고 더 좋은 정책을 만드는 시간으로 채우게 됐다. 오랜만에 가족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저녁밥도 같이 먹고, 앞치마를 두른 채 직접 요리도 했다. 좋아하던 뮤지컬 특별공연 영상을 유튜브로 보며 힐링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참 오랜만의 채움이었다. 

 덕분에 ‘쉬는 것도 능력’임을, ‘충분히 쉬어야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코로나19라는 어쩔 수 없는 불행 속에서 누린 쉼이었지만 긴장되고 어려운 때일수록 일부러라도 쉬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지금까지 난 큰 쉼터를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였다. 환경부 근무 12년차 무렵 어쩔 수 없이 아프리카로 파견근무를 가게 됐다. 그간 방송으로 접한 아프리카는 가난·마약·해적·전염병·약탈 등 부정의 총 집합체였다. 그런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난생 처음의 여유였지만, 정작 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내게 아프리카는 ‘나만의 안식처이자 피난처’ 즉, 케렌시아(Querencia)였다.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이라는 스페인어 뜻처럼 지쳐있던 나를 재충전시켜줬다.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환경부 지방청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이미 한 번 다녀온 지방청 근무인데다 이유도 모른 채 내려가야 하는 심정은 유배라도 가는 듯 암담했다. 성당에 홀로 앉아 얼추 3시간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분노가 사라지고 억울하게만 느껴졌던 지방 발령이 ‘쉼’으로 다가왔다. 아프리카에서 케렌시아를 찾은 이후 꼭 12년 만의 안식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쉼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더 깊이 보게 됐다.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 황금을 찾아 나선 이들의 일화에서도 쉼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황금을 캐려고 말을 타고 나선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쉼 없이 밤낮으로 달리고, 나머지 일부는 빨간 날은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는? 충분히 쉬면서 달린 사람들이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쉬지 않고 달린 사람들과 말들은 지치고 병이 나 더 늘어진 탓이다. 대신 쉼을 알뜰히 챙긴 이들은 황금도 발견하고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한 삶을 살게 됐다. (두 명의 나무꾼 일화도 있다. 쉬지 않고 일한 사람보다 50분 일하고 10분 쉰 사람이 나무를 더 많이 하자 계속 일만 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물었다. 그랬더니 "10분을 쉬는 사이 나는 도끼날을 갈았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쉼이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였던 셈이다.)  

 이렇게 쉼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관성적으로 달리려고만 하는데 곳곳에 쉼의 실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퍽이나 다행이다. 일례로 지난 8월 14일, 국내에 택배 서비스가 도입된 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 없는 날’이 지정됐다. 택배일을 시작한 이래 첫 가족여행을 가게 됐다며 들떠있던 택배기사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돌이켜보면 하루하루가 바쁘고 힘든 날의 연속이다. 

 특히나 올핸 코로나19에 역대급으로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겹쳐 그 고됨이 참 깊고 길다. 이럴 때일수록 꼭 챙겨야할 게 바로 ‘쉼’이다. 코로나19 때문에 휴가철임에도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불평불만이 커질 법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틈틈이 쉼을 누려보자. 지친 일상에 소중한 쉼표가 돼주고 희망찬 내일의 비타민이 돼줄 나만의 쉼, 케렌시아를 찾으면? 지금의 고됨이 한결 나아지리라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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