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수도 1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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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수도 110년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 기호일보
  • 승인 2020.08.28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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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우리나라 근대 상수도는 뚝섬정수장을 완공해 1908년 9월 1월부터 서울 4대문안과 용산일대에 급수하면서 시작됐다. 전근대사회에서 식음수를 얻기 위한 대표적 수리시설은 우물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도시가 팽창됨에 따라 물의 수요가 증가되고 수질이 점차 악화되면서 지하수 등으로 충당하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때때로 전염병이 만연함으로써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수도 필요성이 절실하게 됐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각국의 조계지가 확대되고 외국인 거주자가 늘어나자 그들의 식수와 생활용수 및 선박용수 등 물 수급이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됐다. 개항 초기 외국인 거주민들의 물 수급은 인천 지역민이 사용하던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제물포에 입항한 국내외 선박에도 물 공급이 필요했는데 웃터골 큰우물의 물을 북성동 해변까지 끌어와 이를 소형 선박에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주민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 우물의 급수도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해안지대에 위치하고 인구가 가장 많았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식수문제 해결은 더욱 시급했다. 1889년께부터 일본인들은 물 공급을 위한 본격적인 우물 시추가 시작했는데, 기무라구미(木村組)는 북성동과 송월동에 대형우물 3곳을 판 후 거류지와 선박 등에 물을 공급했다. 일제는 급수 문제를 임시로 우물을 뚫어 해결했지만, 점차 풍부하고 위생적인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천 상수도의 부설은 일본인 민간단체 주도로 추진됐다. 1904년 11월 인천항 수도 부설권을 일본인이 허가를 받음에 따라 1905년 2월 문학산 계곡에 수원지 부설 계획을 구상했다. 이 계획은 개항장으로부터 6㎞ 정도 떨어진 문학산 계곡에 수원지를 건설해 약 1만4천여 명에게 물을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인천의 일본인 거주자는 1만2천711명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 계획은 전적으로 일본인의 식수 공급을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종단계에서 문학산 수원지가 규모가 작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검토 의견에 따라 실현되지 못했다.

문학산 수원지 계획이 무산된 이후 1905년 6월 인천과 경성의 거류민단장이 경성의 영사관에서 만나 한강물을 공동으로 끌어다 쓰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한강 연안인 노량진에 수원지를 건설하고 송수시설을 통해 인천으로 급수한다는 계획이었다. 1906년 4월 대한제국은 임시로 수도국을 설치하고 6월에는 인천지역 일본인들이 제안한 경인수도 부설 요구를 최종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실행을 위한 측량과 설계에 돌입했다. 경인수도 공사자금은 일본 흥업은행에서 관세 수입을 담보로 대출 받아 충당하기로 했다. 

노량진에서 인천 송현동 배수지까지 30㎞의 송수관은 경인철도를 따라 조성됐는데 영등포역, 오류동역, 소사역, 부평역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매설됐다. 공사는 4년간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됐고 마침내 1910년 10월 30일 인천상수도 통수식(通水式)이 송현배수지 내 공터에서 성대히 거행됐다. 그리고 2개월의 시험운전 기간을 거쳐 이해 12월 1일부터 급수가 시작됐는데 송현배수지보다 높은 고지대는 물 수급이 어렵다고 판단해 급수에서 배제됐다. 인천 상수도가 도입된 후에도 선박급수, 양조장, 간장공장, 대중목욕탕 등 주요 상업 및 산업용수는 대체로 지하수 이용이 많았기 때문에 지하수를 공급하는 수상(水商)사업은 그래도 여전히 번창했다.  

상수도는 우물이나 하천수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던 근대화의 산물이었지만 상수도와 관련한 ‘우여곡절’은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생해 왔고 앞으로도 예측이 불가한 실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상수도 확산 과정은 그동안 이용했던 지하수와 우물을 방치하고 쇠락해가게 했다. 110년이 지난 오늘날 식수문화는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에서조차 생수를 사먹는 가구가 다수이며 수돗물에서 자연수로의 회귀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상수도가 더 이상 식수나 생활용수 문제의 해법이 아닌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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