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555조8천억 원으로 편성했다. 역대 최대치였던 올해 예산 513조3천억 원보다 8.5% 증가한 수준이다. 정부의 정책 기조, 최근 경제 여건들을 볼 때 충분히 예상됐던 규모와 내용들이다. 한국형 뉴딜 사업에는 21조3천억 원이 지출될 예정이다. 200만 개 일자리를 유지·창출하는 데 8조6천억 원, 청년 희망패키지 지원사업 명목으로 20조7천억 원이 책정됐다. 저소득 가구 복지 지원 확대, 의료 급여항목 보장성 강화 및 요양보험 국고 지원 확대, 고교 무상교육 전면 실시 등 생계·의료·주거·교육 안전망을 확충하는데도 46조9천억 원이 투입된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수해를 예방하는 등 보건·안전 분야에도 7조1천억 원이 지원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 가장 아쉬운 건 ‘균형재정 훼손’이다. 이번 예산안이 계획대로 집행되면 적자 국채 발행 규모가 사상 최대인 89조7천억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이것도 올해보다 소득세수가 1.5%, 부동산 세수가 54.0% 증가해야 가능한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 위기감 없이 확장 재정이 불가피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일반적으로 지출이 수익을 초과하면 재산이 줄어들거나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상적인 가계와 기업이라면 수익에 맞춰 씀씀이를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정부의 예산안 편성 및 집행 원칙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균형재정 파괴는 암울한 미래를 담보로 장밋빛 현실을 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세수 확대가 어려우면 정부가 집중해야 할 일은 ‘세출 구조조정’이다. 불요불급한 사업을 혁신적으로 축소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쉬운 말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에 돈 쓰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정 연령대(노인, 청년 등)에 혜택이 집중된 재정일자리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류의 사업은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시행돼 온 것들이다. 정부가 정책 기조를 친시장·친기업으로 전환하고 동기 부여만 제대로 해주면 얼마든지 민간 영역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시장 원리와 자유 경제의 긍정적인 힘을 믿지 못하고, 이것 저것 다 손대니 재정적자만 만성화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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