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2020년 9월 1일, ‘여권통문의 날’ 이 처음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다양한 행사들이 축소됐지만 근대의 전환점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변화에 대한 도전과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역사적인 날이다. 여성의 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근대 여성 교육에 대한 의지로 발현됐는데, 그것은 120여 년 전인 1898년 ‘여권통문(女權通文)’으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황성신문, 독립신문 등에서 보도됐듯이 서울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李召史), 김소사(金召史)의 이름으로 ‘여학교 설시 통문(女學校設始通文)’을 발표했다. 이 통문에는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 정치 참여권, 경제 활동 참여권이 명시됐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여권운동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12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운동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하고 최초의 순수사립여학교인 순성여학교(順成女學校)를 설립, 후원했으며 여성들을 계발시키는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므로 여권통문은 최초 한국여성인권선언서의 의미를 가지며 실제로 여학교를 설치한 점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이러한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반영돼 1919년 임시정부 헌장에는 남녀 평등의 문구가 명기됐고, 1948년 발표된 헌법에도 언급됐으며, 1958년 민·참의원 선거의 피선거권이 법적으로 명시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 인권의 척도는 정치 참여권 보장이었는데 외국의 경우, 프랑스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프랑스혁명 당시 여성 인권을 주창하다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올랭프 드 구즈(1748~1793)의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 이래, 영국은 1883과 1892년 참정권 요구가 있었지만,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허용했고, 1928년에야 21세 이상에게 허용됐다. 미국 역시, 1830년~1920년까지 100년에 걸쳐 참정권이 허용됐고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야 허용됐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도 각각 1945년, 1946년에 참정권이 주어졌던 사실을 보면, 여성의 권리 찾기는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이 수반됐음을 알 수 있다. 

인천의 근대 여성 교육도 개신교 전파와 함께 일찍부터 사립학교 교육에서 출발했다. 1892년 영화여학교로부터 시작돼 대다수 여학생들이 이화학당으로 진학했고 이후 외국 유학을 가거나 혹은 교사로 활동하면서 사회에 기여했음을 자료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최초 정규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피아노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한 여성으로 알려진 김애식(1890~1950), 한국인 최초의 감리교 목사인 김기범 목사의 7남매 중 막내로 이화보육학교 학감과 이화부속유치원 원장을 지낸 김애마(1903∼1996),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음악대학장과 이화학당 이사장을 역임한 김영의(1908∼1986), 숭의동 전도관 자리에 계명학원을 운영했고, 제헌국회의원 선거 때 인천 을구에서 출마해 인천 최초 여성 국회의원 후보라는 기록을 남긴 이순희(1905∼?), 이화학당 3·1운동을 주도하면서 유관순에게 영향을 줬으며 대학 예과 교사로 재직하다 여성운동에 적극 참여해 Y.W.C.A. 연합회 창설에 관여했던 하복순(1896~?) 등이 모두 영화학당과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교육을 통해 여성의 활동 영역을 확장했던 인천의 여성들이다. 

아울러 노동야학을 통해 동명학교를 세운 박창례와 이옥녀, 인성초등학교의 전신인 무궁화공민학교장을 지낸 선우황, 최초의 여성 학사이자 첫 자비 유학생으로 여성계 지도자로 활약했던 김란사 등도 인천 여성의 교육 활동에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 중 우리나라 최초 여성박사 김활란, 이화학당 이사장을 지냈던 서은숙, 그리고 선구적 신여성으로 알려진 최활란의 경우,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등 세간에 회자되고 있어 일제강점기 질곡의 역사에 대한 분노와 아픔이 착종되는 안타까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근대의 전환점에 여성 주권의 본질을 교육에서 찾고자 했던 ‘여권통문’의 실천적 현장에 인천 여성이 있었음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