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달 14일 41만 가구를 대상으로 순환 정전이 있었고 이튿날에는 20만 가구의 전력공급이 1시간가량 중단됐다. 캘리포니아 전력계통운영기관은 15일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인 전력 소비 감축을 요청했으나 심각한 전력 부족 상황에 이르자 오후 6시 30분께 주 전체의 전력 공급을 중단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전력 공급 중단 직접 원인은 기록적 폭염에 따른 갑작스러운 전력 수요 증가와 500Mhw 규모의 발전기의 가동 중단 그리고 700Mw 규모의 발전기 운영 점검으로 인한 공급 부족에서 찾을 수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신재생 에너지의 신뢰 가능성 문제와 함께 신재생 에너지 중심정책의 구조적 한계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이기도 하다. 비상 전력 공급 3단계에 들어간 것도 19년 전 캘리포니아 대정전 사태 이후 처음이다. 미국 내에서 신재생 에너지 공급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정전에 대해 우리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지원 확대에 몰두하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우리도 캘리포니아와 같은 위험에 처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캘리포니아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조 달러에 이르는 금액을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2천조 원이 훨씬 넘는다. 이로 인해 같은 기간 캘리포니아의 전기 요금은 미국의 다른 주들에 비해 6배 이상 올랐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보조금 지원으로 인해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급격히 줄이면서 캘리포니아 전기 요금이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던 것이다.

전기 요금 인상은 자연스럽게 전력계통운영자나 발전사업자들로 하여금 신규 투자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전기 요금이 비싼데 새로운 발전설비나 전력망에 대한 투자는 전기 요금을 더 올리게 되고, 정치권과 시민들의 불만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발전설비의 적절한 공급은 불가능해지고 위급한 상황에서 전력 공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신재생 에너지의 본질적 한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신재생 에너지의 간헐성으로 인한 위험을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번 여름 긴 장마로 인해 거의 50일 정도 해가 비치지 않았다. 태양광을 통한 전력생산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행히 태양광 비중이 낮고, 다른 발전원들이 충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20%, 30%로 그 비중이 커질수록 간헐성의 위험성은 높아진다. 

전력저장 장치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비싼 가격과 종종 발생하는 화재와 폭발사고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더 좋은 대안인 수력이나 양수발전을 추가 건설할 여건도 아니다. 결국, 비싼 천연가스 발전기들을 가동해야 하는데, 현재 에너지 정책은 천연가스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정전 시점이 갖는 의미도 잘 분석해야 한다. 통상 정전은 한낮에 발생하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오후 6시 30분에 정전이 됐다. 해가 지면서 태양광 발전이 중단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오후 6시 30분 태양광 발전이 줄어든 만큼 다른 발전소가 가동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수급 정책이 기후변화와 동등한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

자국 내에 석유, 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가진 미국, 러시아로부터 충분히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독일 등과 우리나라를 비교해서도 안 된다. 상황과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옛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석탄도, 원자력도 쉽게 내쳐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다. 수소사회가 화두이지만 아직도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수소사회로 가는 중간단계의 천연가스는 오랜 기간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천연가스 정책을 손본다는 말은 들을 수가 없다. 우리는 기후변화 정책만 있고 에너지 정책이 없는 나라 같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