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시 소래역사관 앞에 전시된 협궤용 증기기관차.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2.인천시립박물관 수인선 사진전 출품 사진. 군자역 1970년 김용수 작가.3.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포스터. 4. 한창원 시인의 시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 5 윤후명 작가의 소설 ‘협궤열차’.
1. 인천시 소래역사관 앞에 전시된 협궤용 증기기관차.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2.인천시립박물관 수인선 사진전 출품 사진. 군자역 1970년 김용수 작가.3.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포스터. 4. 한창원 시인의 시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 5 윤후명 작가의 소설 ‘협궤열차’.

"돈을 내밀자 기차표와 거스름돈이 나왔다. 행선지는 수원이었다. 인천에서 수원까지, 선로가 좁고 기차도 작은 수인선이었다. 내지르는 기적 소리와 함께 기동차는 움직였다. 서해의 끝없는 개펄, 그리고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염전, 두 사람은 다같이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왠지 모르게 지구 끝을 작은 기차가 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69년 출간된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수인선과 소래포구 염전 풍경이다. 이 대목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기생의 딸 양현과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이 밀월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이들은 수인선의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포구 인근의 소금창고까지 찾아왔다.

이는 박경리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통영 새댁이었던 박경리 작가는 1948년 남편 김행도가 인천의 주안염전에 취직하자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인천으로 따라왔다. 이때 옮긴 곳이 바로 현재 동구 금곡동(금창동) 59번지의 주안염전 사택이다. 남편이 근무하는 염전이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바로 옆 마을에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기적 소리를 울려 가며 지나던 풍경이 「토지」 속에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수인선은 시절이 흐르고 다시 개통되면서 모습도 많이 바뀌었지만 각종 문화·예술작품을 통해 옛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1992년 발표된 윤후명 작가의 소설 「협궤열차」에 등장하는 수인선은 마치 다가오는 1995년 운행 중단을 예견한 것처럼 ‘가장 먼 곳으로 사라져 가는 눈물겨운 형상’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되고 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소설은 조개를 잡아 인천으로 팔러 가던 어민들의 생활을 비롯해 소래철교 부근의 어촌 풍경 등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달리는 사람보다도 빨리 달려오고, 산굽이를 돌아오는 협궤열차보다도 빨리 달려오는 황해의 밀물, 그 빠른 바닷물이 소래강의 하구를 흉하게 저며 놓았던 것이다"라는 대목은 협궤열차 운행 중단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던 시기에 열차에 생계를 의존하던 어민들의 뒤숭숭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창원 시인은 2013년 시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를 펴냈다.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단상을 적어낸 이 시집은 협궤열차가 뿌연 연기를 뿌리며 지나간 뒤편에서 땔감을 이고 오는 어머님의 모습을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으로 시야를 가린/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모습/ 지금도 느껴질 듯한 어머님의 그 향기로운 땀 내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가림 시인의 ‘내 마음의 협궤열차’에서 수인선은 해가 져도 기적을 울리면서 달릴 수밖에 없고, 승객들의 팍팍한 일상과 함께 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 내 철없는 협궤열차/ 오늘도/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는 대목처럼 협궤열차는 그리움을 싣고 떠나고, 최근 개통을 통해 추억을 싣고 돌아왔다.

협궤열차는 예술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등장한다. ‘은하철도 999’의 주제곡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가수 김국환은 수인선이 운행 중단된 지 3년이 지난 1998년 ‘수인선 협궤열차’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수인선 협궤열차 황혼길로 사라져 가네. 사라져 가는 추억 속으로 그리움을 실어 나르네, 올 때는 쓸쓸히 오고 갈 때는 더욱 쓸쓸히"라는 가사로 수인선을 추억한다.

수인선 열차는 1977년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킨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촬영 장소로 사용됐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13세 김영출 군이 어머니를 잃고 병환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어린 두 동생을 거느리며 소년가장으로 성장하는 내용으로, 당시 국민학교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할 정도로 큰 이슈가 됐다.

영화 속에는 반짝이는 소금밭과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던 수인선의 작은 열차가 어우러진 풍경으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고된 노동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나온다. 염전 노동자였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이 지은 소금을 협궤열차를 타고 수원으로 나가 팔고, 쌀과 생필품을 구해 돌아오는 동안 수인선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인천과 수원을 오가는 학생들과 농어민, 염전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발이 됐던 수인선이 25년 만에 전면 개통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기억될지 기대가 커진다.

김유리 기자 kyr@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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