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한글날 사이, 우리말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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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과 한글날 사이, 우리말 지키기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 기호일보
  • 승인 2020.09.16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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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9월에는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45년 8월 광복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우리말 시집 「조선미(朝鮮美)」가 발간된 것이다. 물론 해방 이후 처음 발간된 시집으로는 「해방기념시집(중앙문화협회 편, 1945. 12.)」이 꼽혀 왔다. 그렇지만 1971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제17회 독서주간을 맞이해 그 행사의 하나로 한국현대시집 전시회를 1주일간 개최했는데, 여기서 해방 후 최초로 나온 특이한 시집으로 「조선미」가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의 어디에도 출판사명은 기재돼 있지는 않지만 4×6판, 106쪽의 시집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이 책에는 옥중시(獄中詩) 5편을 포함해 모두 51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또한 이 시집의 끝부분에는 ‘뒷말’이라는 2쪽짜리 글이 덧붙여져 있어, 시인의 시집 간행 동기 및 작품의 특성 등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더욱이 이 ‘뒷말’ 다음에는 ‘李泰煥 先生 著’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이 시집 저자가 이태환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시집 「조선미」가 지니는 가치는 ‘해방 후 최초로 나온 우리말 시집’이라는 표면적 의미, 그 너머에서 찾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궁극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과 동지의 건투를 위한 기원이라는, 심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집 간행을 통해 시인이, 광복 직후 몹시 혼란스러웠던 당대 상황에서 국운(國運)을 우려하는 학생들에게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더욱이 그가 광복 전에 어떤 죄명으로 영어생활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버지 이태환이 일제하의 통제된 수업 시간에 조선 역사에 관해 우리말로 강의를 해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 적이 있다고 하는 시인의 장녀 이희복의 증언은, 당시 그의 삶의 자세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며, 실제 그의 시에는 이러한 면이 극도로 잘 형상화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윤택한 푸른 잎과/붉은 꽃을 가진 동백은/명상과 열정 ― 정(靜)과 동(動)의/이대(二大) 진리를 가졌다/언제나 묵묵해/비 오면 비 오는 대로/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추우면 추운 대로/늘 정중한 그대는/뜻 있는 한학자(漢學者)의 모습과도 같다//그대의 열정과 인고는 거대하나니/― 만산병엽(萬山病葉)이 떨어질 때/삼동설한에/능히 고절(苦節)을 지켰다가/봄 되어 신생(新生)이 피어오르면/사명을 다하고/단두대에 오르는/선각자처럼/그대의 꽃은 목부터/툭! 하고 지상에 떨어진다"(시 ‘동백꽃’ 전문). 

‘동백꽃’은 시집 「조선미」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이태환 시의 중요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동백꽃’을 ‘한학자’와 ‘선각자’로 의인화해 그 모습 속에 담겨 있는 정과 동, 그리고 고절과 사명 등의 높은 정신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 2연에서는 "단두대에 오르는/선각자처럼/그대의 꽃은 목부터/툭! 하고 지상에 떨어진다"라고 하여, 동백꽃이 지는 모습을 선각자가 단두대에 올라 목숨을 잃는 것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어, 비장함뿐만 아니라 전율까지도 느끼게 해 준다. 

시인의 아들 이재석이 자신의 서고에 보관해 오던, 이태환의 장서 총 4천30권을 2017년 4월 25일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모두 이관한 후, 시인의 며느리 양경남이 개설한 네이버 카페 ‘이태환 개인 문고’에 들어가 보면, 시인의 연보 작성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탑재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7월 18일 시인의 유족들에 의해 시집 「조선미」의 개정 복간본이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 필자는 여기에 해설을 썼는데, 이처럼 그의 시집 간행에 본인이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광복절을 보내고 한글날을 앞둔 시점에서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고자 한 시인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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