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섬’(落島)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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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섬’(落島) 이야기
김용길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 기호일보
  • 승인 2020.09.16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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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김용길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지금은 해수면 매립사업으로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육지가 돼 버렸지만, 인천 숭의동과 용현동 지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조그마한 섬이 하나 있었다. 인천의 지명에 대한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엽에 서해안에 출몰하는 이양선(異樣船)을 경계하기 위해서 낙섬에 관군이 주둔했는데, 그 당시 지명은 ‘원도’(遠島)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섬의 위치는 지금의 제일제당 앞에서 송도 방향 해안도로로 가다 보면 낙섬사거리 부근이다. 현재는 옹진군청, 항만관련 사무실, 하역업체 등이 다수 소재하고 있으며, 시내로 진입하는 화물차 등이 많아 교통이 매우 혼잡한 곳으로 변했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 외곽지역에는 미군, 영국군 부대들이 다수 주둔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지역인 낙섬에는 미군의 저유소를 지키는 부대 주위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조망 안쪽 미군병사에게 ‘헬로 양키 기브 미 껌’하고 서툰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외치면, 철조망 너머로 껌, 초콜릿 등을 던져주곤 했다. 어린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흔히 미제껌과 초콜릿은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었고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간식거리가 귀하고 생활이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인천지역에는 조선 말기 무렵부터  나라정책으로 낙섬(용현)염전 이외에도 주안, 남동, 소래, 서곳, 군자 등 해안가에 많은 염전이 조성돼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인천이 전국 천일염 생산량의 50% 이상을 생산해 초등학교 시절 ‘사회교과서’에 우리나라 최대의 천일염 생산지로 표기될 정도였다. 항간에 지역특색을 이야기하며 인천 사람은 ‘짠물’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짠물이라는 연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많은 양의 소금생산으로 인해 붙여지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낙섬 가는 길은 지금의 제일제당 앞과 남부역(현재 수인선 숭의역)사이에서 약 2㎞ 정도의 둑길인 방파제가 이어져 있었고 방파제 안쪽 용현동 일대에 염전이 조성돼 있었다. 방파제에서 내려다 보면 염전지역 여기저기 봉곳이 솟아 있는 하얀 소금더미와 염전 사이에 까만 목재로 지어진 소금창고, 햇빛에 검게 그을린 염부들이 부지런히 써레를 밀고 수차를 돌리며 염전 여기저기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방파제 중간중간에는 염전쪽으로 바닷물을 넣기 위한 수문이 있었는데, 그 중 낙섬 부근에 설치된 수문 안쪽으로 넓은 저수지가 형성돼 여름철이면 주민들의 간이해수욕장으로 애용됐던 것이다. 또한 낙섬 입구와 특정지역(속칭 옐로하우스)앞에는 낚시꾼들을 위해 낚시통과 대나무 낚싯대, 갯지렁이 등을 파는 상점이 여러 곳 있었고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을철이면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에서의 망둥어잡이는 연례행사였다. 가을철 망둥어는 크기도 하지만 입갑(미끼)이 없이도 잘 잡혔고, 간혹 놓쳤던 놈이 다시 잡히기도 해 소위 머리 나쁜 사람을 ‘망둥어 대가리’라고 놀리기도 했다. 이렇게 잡은 망둥어는 손질해 집집마다 철망 담장이나 돗자리 등에 널어 말려 한겨울 동안 긴요한 반찬거리가 됐다. 

또한 낙섬은 내가 살던 숭의동을 비롯해 용현동, 도원동, 신흥동, 신포동 등 지역 사람들의 유일한 해수욕장이었으며 갯벌에서 잡는 조개, 고둥, 낙지, 망둥어 등은 시중에 판매돼 생계에 많은 도움을 주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해수욕의 즐거움과 더불어 안타까운 것은 가끔 익사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저수지 가운데 물길이 드나드는 곳은 골이 깊었는데, 수영이 서툰 어린아이들이 물속 깊이를  모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가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물위로 떠오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우리들은 물가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며 발만 동동거릴 뿐 속수무책이었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간이 해수욕장에는 안전요원은 물론 안전시설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익사사고가 있는 날이면 겁을 먹고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변변한 해수욕장이 없던 시절이라 이듬해에는 또다시 낙섬 해수욕장을 찾아 놀곤했다. 이제는 인천의 전체적인 지형도 바뀌어 인천 토박이인 나도 옛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낙섬 주변만 하더라도 모두 매립돼 도시가 형성됐고 지금의 제일제당 앞에서 연안부두까지 광활한 면적이 육지로 변해 부두에서는 서해안의 여러 섬을 오가는 여객선이 줄을 잇고, 수많은 외항선이 인천항을 드나든다. 

수평선 너머 멀리 보이던 바다 한가운데에 인천대교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송도에는 국제도시 건설이 한창이며 각종 산업시설과 유수한 건물이 건축돼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됐다. 끝도 없이 육지로 변한 낙섬쪽을 바라보며, 이제는 위치조차 가물거리는 낙섬해수욕장과 넓은 염전, 여름 뙤약볕에 검게 그을린 사람들이,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방파제 둑길을 오가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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