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장
이기용 인천지방법무사회 정보화위원장

"이 법무사! 전에 B에게 물품대금청구소송해서 판결 받아 줬던 것 벌써 10년이 다 돼가요. 또 소송해 줘."

내가 소장을 작성해줬던 김 사장은  승소판결을 받은 후 채무자에게 별다른 재산이 없어 시간만 흘려보냈다. 이제는 판결 받은 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켜 달라는 뜻이다. 시효제도는 일정한 사실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 때에 그 상태가 진실한 권리관계에 합치되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사실관계를 존중해 권리를 발생시키거나 소멸시키는 제도인데, 권리행사의 외관이 일정 기간 계속된 때 처음부터 권리취득을 한 것으로 효과를 부여하는 취득시효제도와 권리를 오랫동안 행사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면 처음부터 권리가 없었던 것으로 하는 소멸시효제도가 있다. 

법대 1학년 때 처음 배운 소멸시효제도는 내게 경이적이었다. 예를 들어 ‘상인 A가 B에게 변제기 약정 없이 물품을 판매했다면 판매와 동시에 A의 물품대금채권은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A의 물품대금채권은 시효기간이 3년인데, A가 그 기간 내에 재판상 청구, 파산절차참가, 지급명령신청 등 일정한 방법의 권리행사(대여금 변제하라고 내용증명이나 말로 한 경우에는 6개월 이내에 재판상 청구 등 다른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를 하지 않으면 기간만료로 소멸하게 되고 그 효과는 처음부터 권리가 없었던 것과 같다. 

따라서 이후 A가 B에게 대금청구소송을 해도  B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면 A는 패소한다. 그러나 A가 그 기간 내에 B를 상대로 대금청구소송을 하면 시효 진행이 중단되고, 승소판결이 확정되면 그 채권은 확정일로부터 새로 10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적용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방치하면 소멸된다는 내용은 내게 큰 가르침이었다.  시효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법률생활의 안정 및 평화질서의 유지,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 위에 잠자는 자에 대한 제재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무사로서 실무현장에 처음 나왔을 때 이미 승소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대해 10년이 돼 가도 강제 집행하지 못하고 다시 시효중단을 위해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이것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그 상대방을 상대로 다시 승소 확정 판결의 전소와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그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지만, 예외적으로 확정 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소는 소의 이익이 있다"라는 1987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 실무 방식이었는데, 내게는 ‘그렇다면 채권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받으면 영구적으로 존속하는 채권이 될 수 있고, 이는 채권의 소멸과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민법 원칙과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인정하는 민사소송법 원칙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에 대해 2018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1987년 판례의 법리가 타당하고 유효하다고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이어서 다른 전원합의체 판결로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로서 이행소송 외에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재판상의 청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 확인을 구하는 형태의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이 허용되고, 채권자는 두 가지 형태의 소송 중 자신의 상황과 필요에 보다 적합한 것을 선택해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김 사장에게 새로운 방식의 확인소송과 기존방식의 이행소송 장단점을 설명했고, 김 사장은 기존 방식 중 지급명령방식을 원했다. 정본을 송달받은 채무자는 이의하지 않아 지급명령은 곧 확정됐고, 집행력 있는 지급명령정본을 받아 본 김 사장은 저렴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줘서 고맙다며 매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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