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미국이 본격적인 중국 기술 견제가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우리나라의 주권과 국익을 위협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은 스스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국력을 키우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첫 단추’라고 지적한다. 

아베 전 총리와 신임 스가 총리의 최근 한국과의 현안 관련 발언을 보면 한일 관계는 당분간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한일 상호 이익을 위해 양국 관계의 개선 필요성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전략적 이익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할 것이 자명한 현실에서 스가 총리의 한국에 대한 변화는 분명 나타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쓴 「덩샤오핑 평전」에서 하나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연구의 석학인 보걸 교수는 일본을 방문한 외국 지도자를 언급하면서 로버트 케네디, 덩샤오핑, 김대중 전 대통령 3인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로 선정한 바 있다. 

이 셋 중 일본에 가장 저자세를 보인 인물이 덩샤오핑. 중국 역사상 최고 지도자로서 일본을 방문하고 일왕을 만났던 그는 중국을 하루빨리 문화대혁명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개혁·개방 정책을 실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일본과 협력 강화를 원했고,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얻어내려 했다. 당시 중·일 관계는 역사 인식 차이와 영토 분쟁이라는 두 가지 악재로 삐걱거리고 있었다.

따라서 덩샤오핑의 일본 방문은 세계 언론의 관심과 함께 해결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가 초점이 돼 기자회견에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덩샤오핑은 의외로 일본을 칭찬했다. 군국주의 일본이 끼친 숱한 해악에 대해 그 자신 항일 투쟁을 한 경험자였기에 의외로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심지어 당시 팽배했던 반일 민족 감정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댜오위다오(釣魚島 : 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에 대해서 "중·일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양국 정부가 영토 분쟁 문제를 다투기보다 후대에 넘기자. 우리 세대의 지혜가 부족해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으나 후세들은 훨씬 총명해 능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덩샤오핑에게 당당한 ‘감정’의 만족을 찾기보다 냉정한 ‘국익’의 계산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 접근 방식이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큰 힘이 됐고 오늘의 중국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거침없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대 세력으로 발돋움한 밑거름에 덩샤오핑의 투트랙 외교가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견제 앞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 또는 감면해주겠다고 하면서 ‘난니완(南泥灣)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는 선언이다. 난니완은 항일전쟁 당시 중국 팔로군이 황무지를 개간해 자급자족을 이뤘던 곳. 한마디로 반도체의 자급자족을 통해 미일 경제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 한국 반도체를 추격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거침없이 해대고 인재와 기술 빼가기에 혈안이 됐던 중국 아닌가. 

한국의 외교가 달라져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우리와 좋든 싫든 긴밀한 관계에 있는 강대국들이다. 싫지만 때로 힘을 기를 때까지 강대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건 국제 외교의 기본이다. 경제적 국익을 위해 덩샤오핑식 방법론도 그중 하나이고, 전략적 이점을 살리고자 난니완 프로젝트 같은 자강론도 필수다. 

지금 역사 인식 문제로 한일 관계는 최악이고,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압박에 대해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미 동맹을 재평가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는 영 미덥지 못하다. 현실이 이럴진대 미래를 낙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결코 내일의 한국이 낙관적일 수 없다. 반도체가 중국에 따라 잡힌다면 그 순간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국내적으로 정부가 반도체 신기술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기업의 역량 발휘 환경을 만들어야겠으나 무엇보다 동북아의 협력과 견제가 어떤 바탕에서 추구해야 할 외교적 과제인지 되새겨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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