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4억 명의 중국이 단결하면 산과 바다를 덮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있다"고 자랑했다. 물론 이 말은 독립 성향이 강한 타이완의 차이잉원 민진당 정권이 중국의 군사 행동과 ‘하나의 중국’을 정면으로 비판하자 터져 나왔으나 중국의 지도자들이 노리는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가 어떠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국전쟁에서 한미가 치른 희생을 기린 방탄소년단(BTS)을 공격하는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의 국가 존엄과 관련된 사항"이라며 방탄소년단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서 촉발된 최근의 인천 출신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발언이 관심을 끄는 것도 ‘민족주의’에 대한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의 그 국회의원은 ‘방탄소년단이 중국의 민족적 자부심을 건드린 것이 원인’이라는 요지의 목소리를 냈다.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의 발언이 그 나라의 민족적 자부심이나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면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곤 한다"면서 "이런 경우 시민사회의 자정 작용에 맡기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조용한 외교를 펴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전날 야당의 김현아 비상대책위원이 "정부와 여당이 중국의 방탄소년단 비난에 침묵한다"는 걸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침묵한다’는 야당 인사의 지적이나 ‘시민사회의 자정 작용에 맡기다’는 여당 의원의 반박은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전후 사정을 보면 간단치 않은 점이 많고 그 바탕에 깔린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방탄소년단은 한미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밴 플리트 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리더 RM이 지난주 가상으로 열린 시상식 소감에서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 해에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는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었다. 방탄소년단의 그 ‘소감’에 중국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항미원조(抗美援朝 :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 전쟁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내부적 시각에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으나 적어도 한국전쟁은 남북한이 싸웠고, 미국은 유엔의 기치하에 남한의 적화통일을 막으려 참전했으며, 중국군은 압록강까지 진격한 우리에게 일격을 가하면서 적국으로 등장한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이게 역사적 진실이다. 방탄소년단 리더는 완곡한 표현으로 고난의 역사와 우리 국민의 희생을 밝힌 데 불과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민족 감정을 건드렸다고? ‘환구시보(環球時報)’는 "BTS 말은 잘못이 없고 우리는 중국 팬이 필요없다" 제목의 기사를 올리면서 한국 언론이 이번 사태를 "중국 매체가 여론을 선동한다"는 식으로 보도하자 한국 누리꾼이 그런 과격한 댓글을 달았고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는 요지로 다뤘다. 

환구시보가 중국의 관영 매체이고 거의 국수적 보도를 일삼는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고까지 봐도 무방하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보도는 ‘힘으로 찍어 누르기’ 행태가 정치·안보·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문화 분야까지 확장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 조슈아 윙은 이날 트위터에 "BTS 사태의 이면에 걱정스러운 징후들이 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고취되는 동시에 중국과 다른 나라들 간 긴장이 커지고 있다"고 올렸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4개의 층위를 갖고 있다.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내몽고 등 자치구는 잠재적 갈등 속에서 대체로 체제내화됐고, 티베트·신장위구르는 저항하고 있으며, 반(半) 자치지역인 홍콩과 마카오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자유민주를 추구하는 타이완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反) 중국 정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리고 강제 민족 통합 정책이 재검토될 시점에서 이번 BTS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은 중국 민족주의의 지나친 오만이고 그 도(度)를 넘었다고 하겠다. 그들이 무엇을 노리든 이번 방탄소년단 수상 소감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태는 되레 한국 민족주의 정서의 재무장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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