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을 이끈 서재송<사진>옹이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22일 고(故) 서재송 옹의 가족들에 따르면 지난달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이날 0시께 숨을 거뒀다.

고 서 옹은 1929년 경기도 부천시에 속해 있던 덕적도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12살 때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일제강점기 당시 소학교를 다녔던 그는 중학생 때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1950년 국립부산수산과학대학(현 부경대 수산과학대학)에 진학했으나 같은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뒤 육군 현역병으로 전역한 그는 덕적도로 귀향했다. 이후 1962년부터 30여 년간 보육원을 운영하며 부모를 잃은 고아, 전쟁으로 인한 혼혈 아동 등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1천600여 명의 아이들을 가족처럼 보살피는 등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왔다.

특히 고 서 옹은 1994년 12월 정부가 굴업도를 핵폐기장 최종 후보지로 선정해 발표하자 반대투쟁에 나섰고, 결국 정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건설결사반대 덕적면투쟁위원회 공동대표로서 그는 인천시민들과 수십 차례의 거리집회, 200여 일간의 농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주민 1명이 숨졌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2명이 구속됐다. 그리고 1년여 만인 1995년 12월 16일 정부는 굴업도 방사선 폐기물처리장 고시를 철회했다.

인천의 큰어른을 잃은 이날 지역 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서재송 선생님은 한국전쟁 영웅이었고,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을 이끌었던 활동가였으며, 한평생 부모 잃은 아이들의 아버지로 불렸다"며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선생님의 삶과 정신을 간직하고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서재송 선생님은 ‘내 아이와 입양아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한평생 전쟁고아를 비롯한 고아들의 입양사업에 몸 바쳐 오신 입양인의 아버지"라며 "평생을 가난한 이, 버려진 아이들, 병든 노인, 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을 보살핀 선생님의 영면을 기원 드린다"고 했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벌이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구속 수감됐던 김응호 정의당 부대표는 "서 대표님과의 인연은 잊을 수 없다"며 "그의 굴업도 사랑, 나라 사랑, 사람 사랑의 뜻을 존경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편, 고 서 옹의 빈소는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이며, 장지는 덕적도 서포리 선산이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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