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거짓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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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거짓말 사이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10.2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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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거짓말은 부득이하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양돼야 할 말이다. 하지만 언어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권한이 오로지 시인에게만 주어져 있듯이 소설가에게는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와 합법적 자격이 부여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거짓말은 세상을 호도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눈속임이나 사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소설이 추구하는 픽션은 가공의 세계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개연성과 인과성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필연성은 독자들에게 갈등으로 교착된 생각과 혼란으로 점철된 감정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변칙적이고 불규칙한 체험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하고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모색하게 하며 곁눈질로 흘겨보는 시선을 교정해 세상을 정상적으로 보게 하는 데 매우 유용한 예술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고 있다"는 비아냥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거나 헛소리라는 의미로 내뱉은 말이라면 그건 소설에 대한 모욕을 넘어 평생 제대로 된 소설을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읽어보지 못한 자의 무식의 소치임에 틀림없다. 특히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그 거짓말이 탄로 나면 그런 일은 기억에 없다고 발뺌하는 뻔뻔스러운 행태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소설은 애초부터 남을 기만하고 세상을 속이는 허언에 불과한 존재인지 모른다. 

독서가 취미일 수 없듯이 소설은 그저 심심풀이나 시간 때우기로 애용되는 여가 선용의 수단이 아니다. 음식과 각종 영양제가 몸을 지탱하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듯이 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챙기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인간은 육체적 활동과 신체적 소모로 인한 지친 육신을 밥으로 건사하고 위선적 행태와 가식적 처신에서 비롯되는 허기진 마음을 문학으로 보듬는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재미라는 쾌락도 주지만 비틀리고 흔들리는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도 수행한다. 

따라서 소설을 거짓말이라고 인식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책에 대한 경각심이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컨대 독자들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 일제강점기의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식민 상황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남한산성」을 통해서 명(明)과 청(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게도 구럭도 다 놓치고 온 나라가 오랑캐에게 도륙당하는 조선의 처참한 역사를 목도한다. 한편 이문열의 「사로잡힌 악령」을 통해서 기인처럼 위장한 채 시를 농락하다 미투로 문단에서 사라진, 언감생심 노벨문학상을 꿈꾸던 어느 교활한 시인의 모습과 만날 수 있다. 

한때 외설 시비로 거센 논란과 비판을 낳기도 했던 「즐거운 사라」를 통해서 작가는 한국 사회의 위선적인 성도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본능적 욕구들을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아들에 대한 의혹 제기를 소설을 쓴다고 빈정거린 어느 여성 정치인이자 장관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말이 있다. 판사 재직 시절이나 그 이전에라도 카뮈의 「이방인」이나 헤세의 「데미안」, 카프카의 「심판」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약속」 가운데 어느 한 편이라도 읽어 보았는지 그리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말이다. 

선악에 대한 기독교적인 관념을 비롯해 부조리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죄의 본질과 가벌성(可罰性) 여부에 대한 진지하고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작품들을 만일 읽어 보았다면 적어도 소설을 악의적으로 지어낸 말장난이라고 쉽게 치부하거나 함부로 발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을 필두로 한 소설은 현 사회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지배적 가치가 정말 옳은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또한 우리가 믿고 있고 알고 있는 것이 정말 그런지 의심하게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속임수로 무장한 채 철 지난 이념을 앞세우며 한탕주의에 나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이대로 지속되는 한 조만간 거짓말 같은 진짜 악몽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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