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시인/인천문인협회이사>
최영희<시인/인천문인협회이사>

‘선생님’이란 이름은 참 정겹다. 처음으로 글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는 첫 만남의 대상이었다. 요즘이야 조기교육 열풍으로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은 다 익히지만 예전엔 사정이 달랐다. 하얀 연습장에 네모 칸을 쳐가며 ‘가나다라’ 기본 글자부터 학교에서 배웠으니 말이다. 순수한 동심을 교감하며 원대한 꿈을 키워가던 시절이 ‘선생님’이라는 그리운 이름에 담겨 있다. 때론 사랑의 매를 달게 받으면서도 선생님은 따뜻하고 고마운 대상으로 가슴에 남는다. 그러나 아련한 추억 속의 선생님을 대부분은 만나지 못하고 산다. 바쁜 일상의 무게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만났다. 교단에서 은퇴하고 여유롭게 살고 계신 선생님은 어느새 확연한 노년의 모습이었다. 무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으니 따지고 보면 실로 무심하기 이를 데 없다. 건강도 다소 약해지시고 초롱하던 눈망울은 지긋한 연륜을 담고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던가. 선생님은 여전히 단정하고 중후한 모습이었다. 긴 세월 동안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그간의 세월이 증발한 듯 학창시절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단정하고 평온한 모습이 마치 고향에 돌아와 고단함을 씻고 편안함을 주는 것과 흡사했다. 즐거운 해후였다. 국어 선생님답게 문학에 대한 미련은 여전했다. 시 낭송을 배우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여유자적하게 생활하신다. 그런 선생님은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청년시절인 1964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써왔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일이다.

 두꺼운 대학노트로 무려 40권이란다. 소중하게 보관해온 일기장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놓고 틈틈이 꺼내 본다고 한다. 그 즐거움이 새삼 부럽다. 선생님의 필체는 뛰어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 필체로 꼼꼼이 적혀 있을 일기장을 상상해보니 감탄스럽다. 국어선생님이었으니 문장력도 좋으시고 시대의 생활상이나 개인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테니 가히 보물과도 같으리라.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문학적 활동이기도 하지만 자아성찰과 자기명상의 시간이기도 할진대 경건하게 삶을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항상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 것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기에 더욱 그렇다.

 80세가 얼마 남지 않은 선생님은 하나의 꿈을 갖고 계셨다. 그간의 일기장을 책으로 엮어보고 싶어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인생 황혼기에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회고해 보는 좋은 계기도 될 것이며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도 된다. 

 나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들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별 생각 없이 그저 바쁘기만 하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을 점검해 보는 일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꿈을 항상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힘, 자신을 돌아보는 힘이 부족한 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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