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본 글이다. 

갓 입대한 한 이등병이 몹시 추운 겨울날, 생활관 밖에서 언 손을 녹여 가며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소대장이 안쓰러워 하며 한마디를 건넸다. "김 이병!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하지." 김 이병은 소대장의 말을 듣고 취사장에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갔지만, 고참에게 "군기가 빠졌다"는 핀잔과 함께 한바탕 고된 얼차려만 받아야 했다. 

빈 손으로 돌아와 찬물로 빨래를 다시 계속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중대장이 지나가면서 "김 이병!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서 해라!"라고 말했다. 김 이병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이번에는 취사장에 가지 않았다. 어차피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혼만 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속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중년의 인사계 선임부사관이 그 곁을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어이~! 김 이병! 내가 세수를 좀 하려고 하니까 지금 취사장에 가서 그 대야에 더운 물 좀 받아 와!" 명령을 받은 김 이병은 취사장으로 뛰어가서 취사병에게 보고했고, 금방 뜨거운 물을 한 가득 받아 왔다. 그러자 선임부사관이 말했다. "김 이병! 그 물로 언 손을 녹여가며 해라! 양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동상은 피할 수 있을 거야."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선임부사관 3명의 상급자 모두 부하를 배려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정말로 부하에게 도움이 된 것은 인사계 선임부사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위로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해서는 결코 그 안의 수많은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 문제점들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눈앞의 어려움만 본 사람은 간혹 오히려 당사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더욱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시각으로 건넨 한마디는 위로의 말이 아닌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본질 파악이다. 누군가 자신의 일에 대해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어려움을 호소할 때 진정으로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부분을 도와줘야 할 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근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자칫 당사자의 오해와 반발마저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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