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감

올 2020년도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되돌아보며 특히 올해는 이전과 많이 다른 상황 속에서 생활했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더욱이 사회적 거리두기는 학교에서도 단체활동을 어렵게 했다.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과거 여행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그 소중함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심연수 시인의 1940년 수학여행이 주목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청송(靑松) 심연수 시인은 1918년 강릉에서 출생했으나 일제강점의 시대 상황에서 고국을 떠나 만주·일본 등지에서 유이민으로서 빈궁한 삶을 살다가, 1945년 8월 8일 광복을 1주일 앞두고 당시 만주국 왕청현 춘양진 역전의 물탱크 부근에서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다투다가 그들에 의해 무참히 피살됐다. 그토록 바라던 광복을 1주일 남겨 둔 채 안타깝게도 그는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이처럼 일제 강점의 암담한 현실 상황 속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 간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7월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 제1집(심련수 문학편, 연변인민출판사)이 간행되면서부터다. 

그가 죽은 지 무려 55년 동안 그의 동생 심호수(중국 용정에서 거주하다 2016년 2월 8일 사망)에 의해 항아리 속에 깊숙이 묻혀 간직돼 오다가 비로소 공개된 그의 유고 작품은 1940년대 한국 현대문학사를 풍부히 해 줄 문학의 실체로 여러 논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의 생애의 비극성에서 드러나는 윤동주 시인과의 유사성은 그를, 윤동주와 비교해 일제 말 이국땅에서 민족문학을 지켜낸 대표적 시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고 있다. 

심연수의 시에서 시조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그가 1940년 동흥중학교 졸업(제18회, 용정국민고등학교 제2회)을 앞둔 수학여행(1940. 5. 5. ~ 5. 22.)은 그로 하여금 무려 67편에 이르는 여행시조를 남기게 하는 중요 계기가 됐다. 그는 수학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시조 양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들 시의 끝에는 쓴 날짜가 적혀 있다. 그래서 그 순서대로 이를 읽어보면, 그가 용정을 출발해 ‘두만강→원산→금강산→서울→개성→평양→신의주→대련→봉천→신경→하얼빈→목단강’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따라 여행하면서 느낀 바가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서 밤을 자니 서울 밤 보고파서 / 거리에 나서니까 말소리 서울 말씨 / 옷도 조선옷이요 말도 다 조선말이더라. // 거리엔 흰옷이 조선옷 흰빛이요 / 얼굴은 조선 얼굴 모습도 조선 모습 / 눈을 귀를 다 뜨고 듣고 보고 하였쇠다.(시 「서울의 밤」 전문, 1940. 5. 11.)

이 시조에서는 그가 조국을 방문해 같은 민족으로서 민족적 동질성을 더욱 느낄 수 있게 됐음이 잘 나타나 있어 관심을 끈다. 

못 속에 누(樓)가 비쳐 물속에 잠겼으니 / 옛날의 경회루(慶會樓)는 물속엣 것 참이라오 / 땅 위에 남은 것은 오늘날 경회루외다. // 국빈(國賓)이 놀던 곳도 이곳이 그였지만 / 국빈 없는 오늘엔 주인도 안 놀겠지 / 흙발에 더러워진 석계(石階)는 누구의 소행(所行)인고. 

같은 날 쓰인 시조 ‘경회루’에서는 현재가 과거와 대비돼 있다. 일제 강점으로 인해 국권을 상실하게 된 당시의 시대 상황이 과거와 달리 현재 경회루에는 국빈이 없음에 빗대어져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조의 제2수 종장에서 시인은 "흙발에 더러워진 석계는 누구의 소행인고"라고 함으로써 침략자들의 만행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한글문학을 지켜낸 심연수 시인의 문학사료와 시화 순회전이 이번 주 10일(화)부터 다음 주 15일(일)까지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전시실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관람하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 2006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연변에 머물면서 심연수 시 원본을 보관해 온 그의 동생 심호수 씨 댁을 직접 방문해 이를 사진으로 찍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심연수 원본대조 시전집」 등을 엮으며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런데 그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 및 평가와 함께 그를 바탕으로 한 문학사에서의 온당한 자리매김의 길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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