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명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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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명 어떻게 할 것인가
동네마다 끊긴 명맥, 되살려야 마땅한 일 아닌가
  • 기호일보
  • 승인 2020.11.1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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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리 땅의 지명 변경이 여러 번 있었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또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진행형인 것은 바로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진행된 지명 변경으로, 흔히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 일컫는다. 당시 경기도의 36개 군이 20개 군으로 줄어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명을 모두 한자로 표기하게 된다. ‘두물머리’가 양수리(兩首里)로 바뀐 것처럼 순한글 지명도 한자 지명으로 바뀌었고, 일부 지명은 일본인들의 입맛대로 또는 일본식으로 마구 변경됐다. 

경기도가 지명 변화를 분석한 결과, 도 398개 읍면동 중 160곳이 일제강점기 당시 이름이 변경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많은 유형은 두 지명에서 한 자씩 뽑아서 합친 ‘합성지명’으로 121곳이나 된다. 예를 들어 성남시의 고등동(高登洞)은 고산동(高山洞)과 등자리(登子里)를 합성한 것이다. 해방 이후 자연지명은 대부분 개명됐지만, 행정지명은 그대로여서 지명에 관한 한 일제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안 된 실정이다. 

김기영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김기영 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 죽일면장(竹一面長)이올시다

1914년 일제는 양성, 안성, 죽산 세 지역을 하나의 군으로 통합해 행정구역을 개편하게 된다. 죽산지역은 고구려 때에는 개차산군(皆次山郡)·개산군(介山郡)이라 했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는 죽주(竹州)로 개명했다. 이곳에서는 잘 자라지도 않는 대나무 ‘죽(竹)’자를 넣어 개명한 것은 이곳의 진산이 비봉산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오동나무 숲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봉황의 형국을 이루는 마을에서는 ‘죽(竹)’자나 ‘오(梧)’자를 사용해 지명으로 비보(裨補)하는 곳이 전국적으로 많다. 

조선 태종 때에는 주(州)자로 끝나는 군·현의 명칭은 부·목과 구별하기 위해 도호부 이하는 모두 산(山)과 천(川)으로 대신하게 되면서 죽산(竹山)으로 바뀌게 된다. 일제는 죽산지역의 경우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죽일면·죽이면·죽삼면이라고 개명하게 되지만 ‘죽일’이라는 이름이 욕 같다는 민원이 제기되자 1917년에는 글자를 맞바꾸어 일죽면·이죽면·삼죽면으로 다시 바꿨다. 그러나 ‘이죽’이 또 말썽거리가 된다. ‘이죽거리다’, ‘이죽대다’의 의미가 전혀 곱지 않기 때문에 1992년에는 이죽면을 ‘죽산면’으로 다시 변경했다. 그리하여 과거의 ‘죽산’이라는 지명이 오늘날에는 ‘죽산면’이라는 지명에 온전히 살아남게 된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의 ‘죽산부’ 지도를 보면 읍기(邑基)의 진산인 비봉산 아래 동쪽에는 향교가, 서쪽에는 객사가 그려져 있다. 지도의 고산성은 죽주산성을 가리킨다. 

일제는 가평군 조종면 남서쪽으로 상면(上面)과 접하는 지역을 하면(下面)으로 개명했는데, 2015년 12월 주민들의 압도적인 동의를 얻어 조종면으로 바꾸면서 잃었던 명칭을 되찾았다. 하지만 일제 잔재는 청산했지만 결국 사대주의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타까움을 남겼다.
일제는 가평군 조종면 남서쪽으로 상면(上面)과 접하는 지역을 하면(下面)으로 개명했는데, 2015년 12월 주민들의 압도적인 동의를 얻어 조종면으로 바꾸면서 잃었던 명칭을 되찾았다. 하지만 일제 잔재는 청산했지만 결국 사대주의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타까움을 남겼다.

# 일본이 조선 왕을 누른다

일제의 창지개명 중에는 지명에 쓰인 한자를 바꿔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개명도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왕(王)자가 들어간 지명의 경우 이를 왕(旺)자로 바꾸는 경우다. 의왕시는 정통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해 2007년 한자 이름을 ‘의왕(儀旺)’에서 ‘의왕(義王)’으로 바꿨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법률 제8244호(경기도 의왕시 한자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인데, 본문이 ‘경기도 의왕시의 한자 명칭 儀旺市를 義王市로 한다’는 단 한 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법률이다.

‘儀旺’이라는 한자 이름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합하면서 조선시대 광주에 속한 의곡(義谷)면과 왕륜(王倫)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 기원이다. 법률까지 제정하면서 한자 이름을 바꾸게 된 원인은 이 부근의 여러 면 중에서 하필이면 일제가 의곡면과 왕륜면 두 곳의 지명만을 골라서 합성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旺’은 ‘일본이 조선의 왕을 누른다’라는 뜻도 있고, 또 ‘日+王’으로 구성돼 ‘일본의 왕’이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일제는 서울의 인왕산(仁王山)도 ‘인왕산(仁旺山)’이라고 교묘하게 바꿨던 것이다. 인왕(仁王)의 본래 의미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를 뜻한다. 

# 잘못 걸린 문패

분당신도시의 경우 분당(盆唐)으로 문패를 잘못 걸어놓았다. 조선시대 후기의 양안(토지대장)에 분당(盆堂)으로 나오는 이 지역은 돌마면(突馬面)의 분점리(盆店里)와 당우리(堂隅里)가 통합돼 형성된 마을이다. 분점리는 옹기장이 상점들이 있는 마을이고, 당우리는 당집 모퉁이 마을로 당모루라고도 한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변경할 때 분점리와 당우리를 합쳐서 분당리(盆唐理)라는 합성지명이 등장하게 된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지만 ‘堂’이 ‘唐’으로 잘못 입력됐기 때문에 ‘전국 제1의 명품 도시 분당구’라고 자부하는 구청장의 말대로 분당구가 명실상부한 명품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분당(盆堂)으로 개명해야 한다. 전문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처럼 주장하지만 분당구청 홈페이지에서는 여전히 분당(盆唐)을 고집하고 있다.

한편, 일제는 쓰기가 어려운 한자를 제멋대로 바꾸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분당구의 구미동(九美洞)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광주군 낙생면 구미리(九美里)로 편제되면서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 관한 설이 구구하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라 구미(龜尾) 또는 구산(龜山)이라 한 데서 연유됐다는 설이다. 그런데 ‘龜尾’를 쓰기가 어려우니까 쓰기 쉬운 ‘九美’로 일제가 바꾸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밝히기 위해 갖가지 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구글 지도로 보면 산의 형세가 마치 거북이가 꼬리를 끌며 산으로 올라가는 모양인데, 풍수에서는 이를 영구예미형(靈龜曳尾形)의 형국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龜尾’로 바꾸는 것이 옳다. 

안성시 죽산면은 조선 태종 때 처음 죽산(竹山)으로 불렸다. 일제는 죽산지역의 경우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죽일면·죽이면·죽삼면이라고 개명했지만 ‘죽일’이란 이름이 욕 같다는 민원에 일죽면·이죽면·삼죽면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죽’이라는 말 또한 의미가 곱지않아 문제가 되다가, 1992년 안성시가 이죽면을 다시 죽산면으로 변경했다.
안성시 죽산면은 조선 태종 때 처음 죽산(竹山)으로 불렸다. 일제는 죽산지역의 경우 동쪽으로부터 차례로 죽일면·죽이면·죽삼면이라고 개명했지만 ‘죽일’이란 이름이 욕 같다는 민원에 일죽면·이죽면·삼죽면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죽’이라는 말 또한 의미가 곱지않아 문제가 되다가, 1992년 안성시가 이죽면을 다시 죽산면으로 변경했다.

# 개명(改名)은 제대로 해야

경기도 문화유산과에 따르면 현재 도내 자연지명은 대부분 개명됐다. 바로잡아야 할 창지개명 사례는 대다수의 행정지명이다. 행정지명의 경우 지방자치법에 따라 해당 지방의회의 의견이나 주민투표를 거쳐 변경할 수 있다. 가평군 조종면(朝宗面)이 그 사례다. 남서쪽으로 상면(上面)과 접하는 이 지역을 일제는 하면(下面)으로 개명했는데, 2015년 12월 압도적인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조종면으로 바꾸면서 잃었던 명칭을 되찾았지만 개운치가 않다. 조종면 선포식에서 당시의 가평군수는 "…저력과 역량을 모아 조종(朝宗)의 가치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끌어올려 누구나 살고 싶고 자랑스러운 고장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 가자"고 역설했지만 ‘조종(朝宗)’이란 옛날 중국(中國)에서 제후가 봄과 여름에 천자(天子)를 뵌다는 의미로 결국은 중화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사대주의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도 조종면 대보리(大報理)에 가면 조종암(朝宗巖)에는 ‘만절필동재조번방(萬折必東再造藩邦)’, ‘일모도원지통재심(日暮途遠至痛在心)’ 등 모화사상으로 가득 찬 여러 암각문의 글씨가 선명하며,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는 인근 대통묘(大統廟)에서는 명나라 태조·신종·의종을 주벽(主壁)으로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 19일에 제행을 봉행(奉行)하고 있다. 대보리의 ‘대보(大報)’라는 말도 명나라의 은혜에 크게 보답한다는 것으로 창덕궁 비원의 가장 외진 곳에 설치한 대보단(大報壇)과 궤를 같이 한다. 숙종 때 설치된 대보단에서는 이후 조선의 역대 임금들이 명나라 황제들의 제사를 몰래 지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면을 조종면으로 개명한 것은 겨우 식민(植民)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사대(事大)의 수렁에 빠지는 꼴이어서 진정으로 홀로서기(獨立)가 이렇게도 어려운지 착잡한 심정을 떨칠 수가 없다. 

의왕시의 지명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합했던 때 의곡(義谷)면과 왕륜(王倫)면을 첫 글자를 따 합치면서 새로 만들어졌는데,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왕륜의 王을 旺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의왕시는 2007년 지역 정체성 회복을 위해 한자 이름을 ‘의왕(儀旺)’에서 ‘의왕(義王)’으로 다시 바꿨다.
의왕시의 지명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합했던 때 의곡(義谷)면과 왕륜(王倫)면을 첫 글자를 따 합치면서 새로 만들어졌는데,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왕륜의 王을 旺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의왕시는 2007년 지역 정체성 회복을 위해 한자 이름을 ‘의왕(儀旺)’에서 ‘의왕(義王)’으로 다시 바꿨다.

# 우리 고유의 지명을 되찾자

식민 잔재의 청산과 지역의 역사성·정체성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지명을 되찾아야 한다. 일제는 물론 조선시대의 모든 지도에도 고유의 지명을 한자로 표기했었는데 이제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능한 고유지명은 꼭 우리말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고유지명을 찾으려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제강점기 때 만든 많은 지역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제가 시행한 창지개명의 목적은 식민지 통치와 수탈을 수월히 하는 데 있었다. 바로잡아야 할 창지개명 사례는 행정지명이 대다수이므로 해당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관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유지명을 한자(漢字)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어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갖춰야 한다. 지명 자체가 역사와 문화의 핵심이므로 향토사는 지명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보매체나 대중매체 등을 이용해 왜곡된 지명을 바꾸는 작업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작은 마을이라도 고유지명을 사용하는 운동을 일으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글·사진=김기영(위례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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