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백과사전에 따르면, 반얀나무는 높이가 30m 정도 되고, 한 그루에서 끊임없이 가지가 퍼질 뿐만 아니라 하나의 가지에서 여러 개의 받침뿌리가 나와 금방 숲처럼 변합니다. 가지가 뻗어 나가다 휘어져 땅에 닿으면 거기서 뿌리가 나서 다시 가지가 자란다는 겁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안도현)에 인도를 대표하는 수목 중 하나인 반얀나무에 대한 글이 있어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드립니다.

"뿌리가 약한 반얀나무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제 팔뚝에서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습성이 있다. 수백, 수천 갈래의 뿌리들이 가지에서 땅으로 내려와 흙을 움켜쥐어야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는 거다. 폭풍우 몰아치던 날 밤, 나는 낡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사나운 바람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울고 있는 반얀나무들을 봤다. 아직 땅에 닿지 못한 실뿌리들을 치렁치렁 가지에 매달고 있는 그들이 문득 이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나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가, 내게 슬쩍 물어본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반얀나무는 환경이 얼마나 척박하길래 허공에서까지도 뿌리를 내려 땅으로 내려갈까를 상상해봅니다. 그러자 ‘이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슬픈 나무’라는 저자의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한편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반얀나무에서 저는 코로나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슬픈 모습도 보았습니다. 삶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이어집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슬프고 고통스러움은 꼬리를 감추지만,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기쁨과 즐거움 역시 숨어버립니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이 지금 온 지구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결국에는 성장과 성숙한 삶으로 이어질 겁니다. 고통 없이 성장하는 온실의 꽃보다는 거친 들판에서 자란 야생화가 훨씬 더 강한 것처럼 말입니다.

「스님의 맨발」(한승원)에 한국 최초의 판사 스님으로 알려진 효봉 스님의 일화가 나옵니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은 그는 어느 날 떡을 먹고 사경을 헤매다 그 충격으로 스승과도 같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충격을 받습니다. 훗날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해 판사가 된 그의 앞길에는 꽃길만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독립투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을 견디지 못하고 법복을 벗어 던진 그는 속세를 떠났습니다.

제가 그분이 되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어렵사리 공부한 끝에 판사가 돼 이제는 행복한 삶만이 기다릴 것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나의 잘못된 판결로 독립운동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증오의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던 사형수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잠을 자거나 눈을 뜨거나 그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괴롭습니다. 판사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속죄하는 마음으로 스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조선인 판사가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싸워온 조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올바로 사는 것일까?’라는 깊은 사유가 그를 또 다른 고통의 길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돌아와서는 누더기를 걸치고 전국을 돌며 엿장수로 고행의 길을 계속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고행 끝에 큰스님이 됐습니다. 

효봉 스님의 삶을 접하면서 고통 속에서 해탈의 길을 깨달은 가르침 하나가 제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수행자가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 ‘너나 잘해라!’라는 말을 하며 자기관리나 철저히 하라고 했다."

이미 가진 뿌리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반얀나무의 무서운 생존력이 계속되는 코로나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안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안도현 시인의 끝말을 곱씹어봅니다. "나는 지금 나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가, 내게 슬쩍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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