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빠른 연생’이라는 제도 아닌 제도가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에 따라 나눠진 ‘빠른 연생’은 동급생에게는 동생 취급을 당하고, 후배들에게는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이들 ‘빠른 연생’들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생일이 지나지 않아 법적으로 미성년자로 분류돼 각종 술자리에 참석하면서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생일이 2월인 나는 이 ‘빠른 연생’에 속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1∼2년 늦게 군대에 입대했고, 2001년 또는 2002년 군번인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들이 전역할 즈음 입대한 2003년 군번으로 군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사실, 입대하지 않아도 됐었다. 

병무청에서는 혈압이 높다는 이유로 지정병원에서 진단서만 끊어오면 면제라고 했지만, ‘친구들에게 면제라고 놀림받기 싫어서’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군대에는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3급 판정을 받고 현역으로 입대해 만기 전역했다. 그 누구와 한 약속이 아니었다.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1년여 전, 우리나라에는 전 국민이 분노할 일이 있었다. 1990년대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한 댄스가수가 군 입대를 앞둔 2002년 1월 해외 공연을 이유로 지인의 보증을 받아 출국한 뒤 돌연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일 때문이다. 

공분한 사람들 중에는 나도 있었다. 1997년 1집 앨범부터 논란이 빚어지기 전까지 발매한 모든 앨범을 구입했고,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으며, 그의 패션을 따라했던 입장에서 그토록 건강하고 건실하고 성실한 청년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가 각종 매체를 통해 "꼭 군대에 가겠다"고 약속했던 그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선택을 통해 약속을 어긴데 대해 실망이 큰 탓이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한 법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실망을 안겼다. 자신의 잘못을 정치적 문제로 돌리며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했던 각종 사건·사고를 예로 들면서 한국을 비난한 모습이 보여서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의 얘기처럼 그는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입국을 반대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본질’ 외에도 자신을 믿고 신뢰했던 이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친 것 때문이라는 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약속은 믿음이자 신뢰다. 그만큼 약속이 가진 무게는 무겁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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