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저물어 간다. 오늘은 그 마지막 수요일이다. 올 한 해는 전 인류에게 참으로 낯설고 힘든 시간이었다. 어두운 터널처럼 길었던 날들도 돌아보니 벌써 일 년이 됐다. 더디고 느린 것 같던 2020년도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너나 할 것 없이 외부 활동이 제한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가까운 사이라 허물이 없고, 그런 까닭에 지나치게 편하게 대하거나 혹은 이기적으로 행동해 다툼이 생겼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올해처럼 가족과 주변의 안녕을 챙긴 경우도 없었다. 소중함을 알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던 내 가족의 건강이 어느 해보다 절실했던 시간이었다. 2020년을 마무리하는 숨은 영화 찾기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영화 ‘그레이티스트(2009)’를 만나 보자.

베넷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이었다. 부모에게 모든 자식은 다 소중하고 특별하듯이 베넷도 그런 아이였다. 친절하고 따뜻한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어서 학업 성적과 교내 서클 활동도 우수했다. 그런 아들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은 부모에게 청천벽력 같았다. 후유증은 컸다. 엄마인 그레이스는 아들의 사망 직전 상황을 파악하는 데 병적으로 집착했다. 아버지 알렌은 침착하려 애썼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면장애에 시달렸고 근무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형을 잃은 동생 라이언은 불안함을 털기 위해 약에 취해 지냈다.

이 위태로운 가족에게 아들의 여자친구인 로즈가 찾아온다. 사고현장에 함께 있었던 로즈는 경미한 부상 후 회복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임신 소식을 전한다. 아들이 사랑한 사람이자 아들의 흔적을 잉태 중인 로즈를 알렌은 딸처럼 생각하며 살뜰히 대한다. 그러나 베넷에 대한 질문은 사절했다. 임신 중인 로즈는 아이의 아빠인 베넷의 유년시절, 습관, 별명의 이유 등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화제를 돌렸다. 반면 어머니는 베넷의 이야기를 특별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야이기의 끝은 언제나 사망 직전의 상황으로 귀결됐다. 그때마다 로즈는 자신만 살아남은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죽은 아들이 남기고 간 새 생명은 희망 대신 갈등의 씨앗이 됐다.

2009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의 후보작으로 오른 ‘그레이티스트’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가족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수잔 서랜든, 피어스 브로스넌, 캐리 밀리건 등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가족의 갈등이 화해로 이어지는 여정은 더욱 진실되게 다가온다. 

영화 ‘그레이티스트’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여명의 시작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고, 최고로 위대한 가족의 사랑에서 출발함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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