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객원논설위원
김락기 객원논설위원

아름다움의 한계는 어디쯤일까. 아침 햇살에 비끼는 동백꽃망울의 그윽한 자태와 선홍빛 순정. ‘아!’하고 적막 속에서 절로 터지는 탄성, 한순간 우주가 열리는 소리, 온몸으로 퍼지는 희열, 아름다움의 극한에서 오는 느낌들이다. 올 새해 불암산 정상 삿갓봉 위로 솟아오르던 아침 햇살은 유독 강렬했다. 시베리아 한파의 고요로운 잔영 속에 폭발한 새 아침 무풍 햇살은 따스함을 넘어 감격이었다. 영하 13도 혹한 속에 모처럼 함께한 아이들과 인근 산봉에 올랐다. 

수도권 일원에 흩어져 생활 일선에 매진하다 지난밤 늦게 온 자식들이라 안쓰러웠지만, 피붙이끼리라도 일찍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저 각자 건강하고 무사하기를 빌었다. 나아가 사회도 국가도 전 세계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나없이 같았을 것이다. 아내가 준비해온 따끈한 생강·유자차 한 잔씩을 인근 사람들과 나눠 마실 때 오간 덕담이 남아 있다. 하산 무렵, 저 멀리 사방팔방에서 감싸안듯 다가오는 북한산, 불곡산, 관악산, 청계산, 용마산 자락들과 남산타워, 롯데타워를 비롯한 서울·경기의 전경들이 새삼 속가슴을 건드렸다.

지난 연말 꽃 같은 아내가 동백꽃 모종을 구해왔다. 앙증맞고 신선했다. 한 자쯤 자란 키, 하나의 원줄기에 아홉 개 가지, 왕대추알 만한 다섯 송이 꽃봉오리를 차례로 내려 달고, 구어버잎처럼 도타운 청록 잎 쉰여 장을 매단 채 우리집 화목이 됐다. 수십여 초목과 함께 겨울을 나고 있는 우거에, 마침 비어 있던 둥그런 자기 화분에 심었은즉 그 품격이 제격이었다. 열녀 같은 분백(盆栢)의 어엿한 탄생! 남쪽 바다어귀에서 보던 추억 서린 꽃나무, 부산 직장 생활 때 길거리 가로수로 흔히 보던 것과는 판이했다. 역시 만사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보통 세한을 뚫고 피는 꽃으로 납매를 든다. 그 매화도 매화려니와 서울 하늘 아래 이제 막 짙붉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보는 첫사랑 기쁨을 어이할까. 선홍빛 겹겹이 입술을 좋이 다물고 시나브로 피어나는 모습에는 결기가 서려 있다. 아주 단단해 보인다. 인동응결미(忍冬凝結美), 조선 초기 신숙주는 이를 노래하여 대·매화와 벗하면서 흰 눈 밭에 푸름과 붉음이 서로 어우러진다고 했다. 이태백 시집에는 원산이 신라라 하여 우리 토종임을 일컫는 등 고래로부터 동방의 시인문사들이 기려 칭송한 명화라고 문일평의 「화하만필」은 전한다.

금년은 흰 소띠의 해다. 내게 ‘소’라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어릴 적 살던 시골 고향 풍경이다. 초등학교 때 그려놓은 소 크레파스화를 꺼내본다. 여느 한여름 날 어미소는 앉아 오수에 졸고, 송아지는 옆에 서서 빤히 나를 쳐다본다. 오후가 되면 인근 야산으로 소꼴 먹이러 갔다가 해거름이면 소등에 올라타고 귀가하던 일, 겨울철 쇠죽을 끓일 적에 휘젓다가 뜨거운 쇠죽물에 팔목이 빠져 데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내 졸음 연시조 작품 ‘무시래기를 삶으면서’의 셋째 수로 더해본다. "뒤섞을 적 엇구수한 내음은 곧 추억이야/쇠죽을 끓이시던 할매의 뒷모습이/지난한 세월을 타고 눈자위에 어리리." 그 당시 소는 우직한 근면성으로 우리네 농경사회의 핵심 노동력이요 일상문화의 동반자였다. 불가 ‘심우도’의 흰 소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반면에, 이중섭 그림 속 ‘흰 소’는 엄청 사납게 보인다. 마침 캄보디아의 벗이 그 쪽 흰 소 동영상을 보내온 게 있어 찬찬히 들여다봤다. 삼독과 삼학을 동시에 품고 있다니 우리 인간 삶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예언가나 역술인 중에는 올해에 코로나19 변종 전염병 확산, 기업도산 속출, 대형 물난리 같은 천재지변 발생 등등으로 인한 인명손실과 국민 갈등 심화를 경고하고 있다. 이에는 서민을 갈겨보며 시건방에 빠져 있는 위정자들의 부패와 무능이 큰 요인일 수 있다. 작년 10월 기준 한국의 사회빈곤층은 27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무지렁이 목석마저 눈시울에 젖는다. 이 시대 자유민주국가의 표상으로서 지구촌 리더 격인 미국마저 부정선거로 혼란정국이다. ‘태양은 또 떠오른다’는 1957년 미국 영화에 트럼프가 오버랩된다. 이런 때일수록 강렬한 아침 햇살을 꿈꾸면서 동백꽃의 단단한 심정으로 흰 소처럼 수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단시조로 격려한다.

- 천제(天祭)를 염원하며 -

시방 여야 저 모습들
이도 저도 다 아니다
 
양비론을 넘어서는
대통합이 절실하다
 
궁즉통
 
하늘이 나서
지구촌을 바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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