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는 조선인을 태운 첫 이민선 갤릭호가 도착했다. 이들은 협궤 기차로 사탕수수농장이 있는 오아후섬 북쪽 해변가 와이아루아 농장에 도착, 모쿠레이아 캠프에 짐을 풀었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를 떠난 지 22일 만의 일이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해외 이민이 중단될 때까지 하와이로 간 이민자 수는 대략 7천226명이었다. 이들이 하와이는 물론, 미 본토로 진출하면서 오늘날 인구 289만여 명에 이르는 미주 한인 이민사회를 이루는 기반이 됐다. 

그리고 이민 첫 도착일인 1월 13일을 ‘조상숭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당시 인천은 국가 간 계약을 통한 근대 이민의 최초 출발지라는 장소적 의미 외에, 첫 이민선에 탑승한 102명 중 84%인 86명이 제물포, 부평, 강화·교동 등 현 인천광역시 출신이었던 점, 하와이 교포들의 정신적 귀환이 인하대학 설립으로 구현된 사실 등에서 한국 이민사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당시 이민자는 대개가 미혼 남성이었기 때문에 혼기를 훌쩍 넘긴 노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초기 이민자들의 현지 정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사진신부(Picture Bride)’였다. 사진신부는 비교적 교육 수준이 높았지만 나이 차, 언어 장벽 등으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로써 본격적인 초기 한인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사진신부들 또한 개척자처럼 강인하게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갔다. 한인사회는 점차 안정돼 갔고 자수성가 후에 농장에서 벗어나 도시로, 미국 본토로 이주하게 되는 가정도 늘어나게 됐다. 하와이 한인 사회는 이민이라는 인위적인 인구 이동으로 형성된 사회로 그들은 조국이 식민지화 되고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긴 후 나라 잃은 설움을 생생하게 겪어야 했으며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까지 더해져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가운데도 조국을 잊지 않고 하와이 한인들은 국외의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운동 단체를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 독립금과 의연금을 모금했다. 그리고 식민지 조국의 각종 재난에도 구제금을 보냈으며 태평양전쟁 중에는 미국에서 발행된 전시공채를 구입하거나 전쟁으로 희생된 한인들을 위한 구제 활동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러한 한인들의 민족운동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하와이 한인 사회의 여성들은 초기 신명부인회와 부인교육회를 시작으로 대한부인회, 대한소녀리그, 대한부인구제회, 영남부인회, 애국부인회, 대한인애국부인회 등 단체를 통해 독립운동을 주도하거나 지원했다. 이들 여성단체에서 활동했던 주요 인물들에는 사진신부 출신의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 사진신부 출신이면서 여성 단체를 통해 독립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인물로는 김주수, 박금우, 심영신, 이희경, 이숙자, 이영옥, 임차순, 천연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민을 통해 하와이 한인 사회에 편입돼 활동한 인물로는 이정송, 전수산, 몰리 홍, 김도라, 김노디, 황혜수, 황마리아 등이 확인된다. 

당시 활동했던 하와이 한인 여성들의 출신 지역은 평양과 황해도, 경상도 지역이 다수였고, 학력은 한국에서 소학교 과정 이상을 나온 여성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결혼의 경우, 사진신부는 남편과 나이가 17세, 27세, 29세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고, 현지에서 재혼하는 사례도 많아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나 활동과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그들의 주요 활동은 단체 결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특히, 대한부인구제회의 활동이 주요한 계기가 되고 있는데 다만, 독립운동 실천 방법상 차이로 동지회 계열과 국민회 계열로 나뉘어져 활동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 밖에 교회 선교 및 교육 활동 등도 여성 활동의 주요 분야였다.

해외 이민의 최초 출발지가 된 인천은 삼국시대 이래 문물이 유입되는 입구가 된 동시에 디아스포라의 출구가 됐던 역사적인 곳이다. 이미 개항기에 국제사회를 경험했던 인천으로서는 하와이 동포사회와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다민족사회로 변화하는 오늘날에 명실상부한 한민족 공동체사회 구현의 중심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그 가운데 여성들의 활동이 내재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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