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대의 문호 노신은 "조조는 완고하며 편협한 후한의 기풍에 반대해 통탈(通脫)을 역설했다"고 했다. 여기서 통탈이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이단이라도 받아들이며 거리낌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조조는 결단성 있는 인재 등용과 적재적소 기용이라는 행적 외에도 문학적으로 새로운 기풍을 널리 진작시켰다. 허도에서 천자를 모시고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가 둔전제 실시로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고 엄격한 법질서로 민중들의 안정적 삶을 돌보면서 세금을 줄이고 구호사업을 펼쳤는데 그 자신은 절약과 검소를 실천했다. 보통 옷 한 벌을 10년 이상 입었으며 해마다 꿰매 입었다. 그리고 대신들이 은 그릇을 선호할 때 서둘러 나무그릇을 사용해 풍조를 바꾸기도 했다. 이런 조조가 ‘관산을 넘어’라는 부(賦)를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보다 더 귀한 건 없다’는 구절로 시작했다.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살벌한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태평성대에도 쉽지 않은 인간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는 데서 정치가 조조의 면모가 새삼 돋보인다. 정략적으로 세금을 줄이고 구호사업을 펼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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